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간지 10여년. 재미교포인 20대 부부는 두달 전 아무 연고도 없는 전주에 왔다.
눈 내린 한옥마을의 풍경, 집과 집 사이로 오밀조밀 난 골목길, 처음 만난 사람끼리도 함께 노래 부르며 흥을 나눌 수 있는 선술집. 일상속에서 만나는 작은 일들이 이들이 이들 부부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전주에 오길 잘 했다"며 "앞으로도 이곳에 죽 살기"로 마음 먹었다.
전주한옥마을 인근에 지난해 11월 15일 작은 삶터를 마련한 재미교포 장효섭(29)·김경진씨(27) 부부 이야기다.
'좀 더 한국 사람이고 싶어' 고국을 다시 찾은 이들이 전주를 선택한 이유는 물론 따로 있다.
미국에서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기도 한 부부는 풍물의 '징한 맛'에 빠져 언젠가는 풍물을 세계적인 음악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장씨는 서울 출신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 경기도 포천이 고향인 김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이민을 갔다. 부부는 4~5년 전 뉴욕의 한 풍물단체 '한울'에서 처음 만났다. 고등학생 때부터 풍물을 한 김씨는 나름 '장구 좀 친다' 싶었고, 다국적 멤버가 참여해 각국의 전통음악을 다루는 그룹사운드 'Brown Rice Family'(현미 가족)에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던 장씨는 우리 가락을 그들의 음악에 접목하고 싶어 풍물단체를 찾았다.
전주와의 인연은 당시 8년동안 해를 걸러 한달꼴로 뉴욕에 체류하며 임실필봉농악을 비롯, 풍물을 가르친 이정우씨(전주한옥마을 '예가' 사장)씨 덕분이었다. 장씨는 우리 풍물을 접하면서 '굿거리' 장단의 신명과 아름다움에 빠졌지만 다른 멤버들이나 팬들은 정작 한국 장단을 접목한 음악에 시큰둥했다. 문화적 차이였겠지만 그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훌륭한 장단을 이해 못하는 환경이 안타까웠어요. 우리 장단을 제대로 배워 세계적인 퓨전음악을 만들고 싶었죠."
부부에게는 '풍물'말고도 또 다른 귀향 이유도 있었다. '영원한 이방인의 삶이 싫었다'는 '좀 더 인간적인' 이유다. 뉴욕은 자유로운 도시여서 음악을 하는 부부에게는 그만큼 매력도 컸다. 그러나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정이 넘치고, 또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곳. 그곳이 바로 전주였어요."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꼽히는 전주 조차 큰도시를 따라가느라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때로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뉴욕이 그립기도 하지만 그들은 전주에서 충분히 행복하다.
"서울에서 친구가 놀러왔는데 눈 내린 한옥마을의 풍경과 오래된 가게들을 보면서 놀라더군요. 전주는 엔틱 가치가 높은 도시라고 소개하며 저 스스로 즐거웠습니다."
월세 12만원짜리 단칸방에 살면서 풍물을 배우는 이들 부부에게 경인년은 특별한 의미다. 아내 김씨는 임신 4개월. 올 봄, 아기가 태어나면 부부는 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소박한 것으로부터 행복을 찾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는 이들 부부. 그래서일까. 우리 장단으로 세계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은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는다. 한옥마을 골목길을 걸어오는 젊은 음악인 부부의 웃음이 새해 아침, 더 행복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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