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물아홉에 들어섰다. 벌써 스물하고도 아홉이라니. 아홉이라는 숫자가 주는 미묘함이 한동안 필자를 꽤나 곤욕스럽게 했다. 물론 나이를 기준으로 청춘의 시작과 끝을 재단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는 피터팬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물아홉이 주는 묘한 위기감을 필자는 한동안 설명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예로부터 어른들은 '아홉수'를 조심하라고 했다. 아홉이라는 숫자가 주는 불완전성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이루기 직전에 이를 그르칠까 두려워하는데서 연유된 '조심과 긴장'의 숫자로 봐야할 것 같다.
물론 아홉수를 피해 작년 말 결혼을 서두르기도 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믿음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집단적인 믿음까진 아니어도 '아홉수'가 풍기는 야릇함에 필자 역시도 잠시 갇혔던 것 같다.
평생을 두고 곱씹을만한 청춘의 수고로움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웠고, 온 몸으로 부딪쳐 왔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그냥 구경한 것에 지나지 않았는지 걱정스러웠다. 무엇보다 혼자 푸르렀다고 생각하며 다른 이들을 훈계하지는 않았는지 무안했다.
사실 아홉수는 1에서 2로, 다시 2에서 3으로, 다시 4로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데서 오는 은근한 파장이자 부담감일 때가 더 많다고 한다. 인생에 어떤 굵은 마디가 있어 때론 넘어지고 때론 급격히 바뀌기도 한다면 그 숫자들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으로 삶을 재단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재단으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를 더욱 날카롭게 몰아세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열아홉이 지나 스물이 되면, 스물아홉을 건너 서른이 되면, 서른아홉을 넘어 다시 마흔이 되면 어제까지 마주했던 모든 것들이 더 이상 그대로일 것 같지 않아서 말이다. 드라마 제목이기도 했지만 이 시절을 '9회말 2아웃'이라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필자도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2001년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뉴욕 양키스와 에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의 경기다.
당시 에리조나의 구원투수였던 김병현은 4차전과 5차전에서 9회에 홈런을 맞는 바람에 역전패했다. 아홉이 주는 긴장감은 찰나의 순간 모든 것이 뒤바뀔 수 있다는 이런 불안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기억하는 장면은 마지막 7차전. 두 게임을 9회에 잃었던 에리조나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구원투수 리베라를 상대로 9회에 역전을 시킨 순간이다. 패배로만 기억되던 9회가 오히려 역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의 묘미는 어쩌면 아홉만이 줄 수 있는 삶의 카타르시스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아홉은 단단하게 속이 꽉 찬 어느 시기의 정점이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도전의 숫자라 스스로 규정하고 싶다. 아홉은 이를 악 물고 뛰어넘어야할 산이 아니다. 아홉이라는 숫자와 함께 겪는 잠깐의 미열은 청춘 그것과 조금은 닮아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과 초조의 미열을 뛰어넘는다면 그것은 분명 몸 안 깊은 곳에서 역전의 희열이 되어 터져 나올 것이다.
/이현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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