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다가 어루만지고 싶은 변산반도…아! 아름답다
이중환은 사람 살 만한 곳을 찾는 탐구생활 『택리지』에서 변산을 일러 '길이 은자가 깃들어 살만한 곳'이라고 상찬했다. 이제 왼쪽에 바다를 두르고 30번국도를 돌아보자. 변산반도, 아름답다. 아름다우니 묵객이 들고 문장을 남긴다.
'쳐다보고 절하고 싶은 곳이 금강산이라면, 끌어다가 어루만지고 싶은 곳이 변산반도이다.' 라고 그 풍광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한 이는 육당 최남선이다. 그로부터 80년 후, '30번국도'를 산문으로 예찬한 이가 있으니 소설가 윤대녕이다. 산문집『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에서 그는 '비 내리는 30번 국도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썼다. 윤대녕처럼 곰소에서 장을 본 후에는 염전에 들러 사진을 찍으며,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을 노래한 이문재의 「소금창고」를 읽어도 좋으리라.
내소사를 그냥 지나치랴. 1925년 한용운 선생이 다녀간 후, 백학명 스님이 주지를 맡고 후에 해안선사가 '은산철벽(銀山鐵壁)'의 화두를 깬 내소사 앞에는 저 옛날 청년이던 소설가 이병천과 박두규 시인이 거처한 지장암이 박배엽의 위패를 안고 조용히 쉬고 있다. 내소사가 거느린 청초한 암자 청련암의 저녁 종소리와 함께 송진우 김성수 여운형 선생이 공부하던 자리에 올라 곰소만의 뻘밭과 그 앞 선운사를 안고 있는 질마재를 볼 수 있다면 그는 변산반도의 반은 본 것이리라.
내소사를 나와 모항가기 전 석포리에는 소설가 윤흥길이 공부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학교는 이제 폐교가 되었다. 아름드리 소나무밭으로 이루어진 모항에서는,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이라고 쓴 안도현의 시를 노래도 불러도 좋으리라. 여기 모항 가까운 변산면 도청리에는 농부시인 박형진이 시심을 일구고 그 뒷산에는 천연기념물 122호인 호랑가시나무 군락이 있다.
격포가 변산반도의 가슴이라면 채석강은 그 심장이다. 서자로 태어나 아픈 소설을 쓰고 안타깝게 죽어간 허균은 '늙어 변산에 살다 뼈를 묻고 싶다' 고 했다. 그가 칭한 율도국이라는 위도가 여기 격포에서 40분이다. '저 수만 권의 책 중/ 맨 밑에 있는 책 한 권을 빼면/ 저 책들/ 와르르 무너질 것인가'라고 시인 차창룡이 노래한 채석강을 지나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의 시인 박영근의 고향 변산면 마포리인데 우리는 그를 살아서 만날 수 없다.
새우 같이 생긴 작은 하섬이 내다보이는 고사포해수욕장 등 뒤로 조금 깊숙이 들어가면 변산면 운산리에는 농부로 삶을 바꾼 윤구병 교수의 변산공동체가 저 산 안에 있다. 변산온천 입구에 서 있는 신석정 시비의 「파도」를 읊어 본 후에는 부안읍 서림공원으로 가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의 매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시인 묵객들이 변산반도를 지나면서 쓴 시들을 모으면 어디 한 권만 되겠는가? 부안에 문화원이 있을 것이고 군청에 문화과가 있다면 한 권 묶으시라. 대명리조트에 오시는 손님들과 곰소에서 소금 한 포대 사 가시는 분들 그냥 한 권씩 쥐어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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