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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이 사는 진메마을을 찾다

김정헌 前 예술위원장 예술가 마을 탐사여행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대표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의 김용택 시인 집을 찾아 마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헌규([email protected])

섬진강 시인이 사는 마을.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진메마을에는 논과 밭, 산골짜기, 바위에도 이름이 다 있다.

 

지난 29일, 발 밑으로 섬진강이 조용히 흐르는 시인의 집 마당에 화가인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들어섰다. 그들의 만남은 축하 인사로 시작됐다. 며칠 전 김 전 위원장에 대한 해임처분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진 참이었다. 인사를 건네는 입장이나 받는 입장이나, 겸연쩍어하며 웃는 수 밖에는 없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해 2월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를 창립했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마을 공동체를 문화와 예술로 되살리기 위해 예술가가 사는 마을로 탐사여행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시가 강물이 되어 흐르는 진메마을로 공부를 하러 왔다.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 사는 게 아니에요. 마을을 이루는 데에도 형식이 있죠. 우리 마을에는 느티나무가 앞과 뒤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강에 빠져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나도 두 명이나 건졌으니까…. 여름이면 느티나무 밑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여기서 자연스럽게 마을 회의가 이뤄지죠. 모든 문제가 느티나무 밑에서 생겼다가 거기서 해결되는 거죠."

 

시인이 마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진메마을은 원래 김씨와 문씨, 양씨의 집성촌이었다. 김씨와 문씨가 대립하는 일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마을 이장은 양씨가 다 맡아보았다. 약속한 적은 없지만, 막말이나 거짓말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면 마을을 떠나야 했다. 일종의 향약(鄕約)이었던 셈. 이 곳에서 나고 자란 시인은 마을을 떠난 사람을 딱 한 명 봤는데, 그는 이웃의 구두를 훔쳤다고 했다.

 

"농촌 공동체는 같이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노는 것입니다. 모를 심다보면 허리가 끊어지게 아파요. 술 마시고 노래하면서 달랠 수 밖에 없죠. 예로부터 노동요가 많고 마을마다 농악이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일이 곧 놀이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늘날은 일은 우리가 하고 놀이는 방송국에서 합니다. 일과 놀이를 뭉쳐놓으면 힘이 생기니까, 권력은 자꾸 일과 놀이를 분리시키려는 경향이 있어요. 80년대 노동판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정월대보름이면 함께 굿을 치던 마을 공동체가 서서히 붕괴되는 것을 지켜봤다. 그는 "농촌체험마을, 마을살리기 등이 한 때 유행처럼 일었다가 예산만 낭비하고 사라지고 말았다"며 "농업정책이 수없이 변화하고 많은 돈이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농촌에 쏟아져 들어왔지만,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잘라말했다. 요즘에는 진메마을 일대 8개 마을이 농촌마을 종합개발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혹시라도 마을이 몸살을 앓게 될까봐 걱정이다.

 

시인은 군에서 문학관을 지어준다고 했지만, "내 문학이 50년, 100년 갈 것이라고 생각은 해봤느냐"며 거절했다고 했다. 문학관에서 창출된 이익이 지역민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전국의 문학관이 텅텅 비어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대신, 매월 첫째주 토요일 시인을 찾아오는 이들과 기행을 하기로 했다. 그는 "나는 문학관을 지을 필요가 없다"며 "이 마을 자체가 문학관"이라고 말했다.

 

시인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는 가끔 전주로 피난을 가기도 한다. 하지만 봄이 되면 고향집 헛간을 고쳐 다시 돌아올 작정이다. 김 전 위원장은 "나처럼 화가로서 무명으로 살아야 안찾아오지"라며 웃는다.

 

"마을은 가난해 보이는데, 내 집만 좋으면 안되잖아요. 어떻게 하면 마을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없는 것처럼 스며들게 지을 수 있을까가 고민입니다."

 

어느날 문득 마을 속으로 들어온 예술가는 관심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다름을 느낄 때 서로가 받는 상처는 크다. 하지만 옛날 농사꾼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시를 짓는 시인은 다르다. 봄이 오면 아이들에게 글짓기와 그림을 가르쳐 주고 때로는 작은 마을을 찾아가는 '가끔 열리는 학교'를 열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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