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패션디자인·신소재등 융합…세계적 브랜드 개발·직접화가 관건
한반도 중부와 서남부에 위치한 옛 백제 땅 금마저. 동쪽으로 천호산과 미륵산이 준험한 산세를 이루고, 서쪽으로 함라산 줄기와 드넓은 평야라, 남쪽은 사수강, 북쪽은 금강을 경계로 또한 평야가 이어졌으니, 옥야청청 주야백리라.
옛 금마저에는 신라 진평왕에게 산더미처럼 가져다주었다는 황금이 산을 이뤘다 하고, 지금 익산에는 금과 은, 각종 보석들이 익산보석단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며, 매년 봄과 가을에는 보석을 테마로 한 축제들이 열리고 있으니, 익산은 가히 황금의 땅이라. '황금 보기를 마 보듯 했다'는 「서동요」의 서동과 미륵사지석탑의 황금빛 유물들, 보석박물관, 보석문화축제, 주얼리엑스포 등 익산은 보석들을 아름다운 목걸이로 꿰는 '실'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익산의 황톳길들은 늘 천이나 만이나 되는 보석처럼 찬란하게 부서진다.
지난해 1월, 문화재청에서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해제하면서 발견된 유물 689점을 일반에게 공개했다. 이 유물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금제사리봉안기와 금제사리호. 금제사리봉안기는 미륵사지 창건설화가 담겨 있고, 금제사리호는 정교한 백제의 금세공기술을 보여준다는 것이 유독 눈에 들었던 이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고대유물은 금과 은, 보석으로 장식된 경우가 많다. 이유는 무엇일까? 귀금속보석이 지닌 상징성과 주술성 때문이다.
금속 중에서 가장 안정성을 지닌 금은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특성으로 불멸(不滅)의 상징이다. 대표적인 보석인 에메랄드와 루비,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는 각각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한다. 중세 서양 사람들은 다이아몬드는 겁쟁이에게 용기를 주고, 에메랄드는 바람을 잠재우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보석은 문화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가치를 인정받았다. 멕시코의 고대문명 아즈텍 문화에서는 에메랄드가 금 다음으로 귀중한 보석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터키석을 귀한 보석으로 여겼지만, 수천 년 동안 중국에서 가장 귀한 보석은 옥이라고 불리는 비취였다. 중국은 다른 보석이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았던 한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금제사리호와 같이 발굴된 미륵사지 유물 중에는 비취장신구도 다수 포함돼 있다. 비취와 함께 한국의 대표 보석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자수정이다. 경상도 언양에서 생산되었던 자수정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는다.
돌을 나무 다루듯 했다는 백제 사람들의 석탑세공기술은 귀금속세공기술에도 온전히 이어졌다. 높이가 13㎝에 불과해 한 손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금제사리호의 외면은 연꽃잎과 인동, 당초, 연주 문양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가히 혼을 뺄 정도로 놀라운 기술이다. 미륵사지 인근 왕궁리 유적에서도 금, 은, 유리 등을 제련했던 도가니 유물이 다수 발굴되어 익산이 백제 귀금속보석세공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이런 역사를 볼 때, 익산이 한국 귀금속보석 산업의 중심지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75년, 마산과 함께 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받은 익산(당시 이리)은 수출특화산업으로 귀금속보석단지를 조성하게 된다. 전국에서 보석가공업체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1980년대 중·후반까지 익산은 다이아몬드 대용으로 사용되는 큐빅지르코니아를 생산하며 큰 호황을 누렸다. 1980년대 말에는 미국 수출량 80% 이상이 익산에서 생산되기도 했다. 당시 세공기술자로 일했던 한 업체 사장은 그 시절을 "어디 가든 큐빅 연마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이른바 익산 귀금속보석 산업의 황금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황금 같던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92년 정부가 보세제한규제를 풀자 익산 보세지역의 비교우위가 사라졌고, 결국 경쟁력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의 커다란 암초는 상승된 인건비였다. 자본과 기술을 지닌 업체들이 하나 둘씩 서울로 빠져나갔으며, 일부는 임금이 싼 중국이나 시장이 큰 일본으로 이전했다. 산업구조도 악화되었다. 예전에는 원석을 수입해 익산에서 가공한 뒤 수출했기에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었지만, 현재 국내 귀금속보석 업체는 중국에서 가공된 보석의 마무리공정을 담당하는, 단순작업 하청으로 먹고사는 경우가 많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산업구조가 익산뿐 아니라 한국 귀금속보석산업 전체로 고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들어 귀금속보석산업은 세계적으로 연간 교역량이 411억 달러에 이를 만큼 시장 규모를 키우고 있지만, 이중 한국이 차지하는 규모는 2% 미만으로 매우 미미하다.
세계 귀금속보석시장에서 한국이 맥을 못 추는 이유는 귀금속보석산업의 가치와 특징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귀금속보석산업은 전통문화와 패션디자인산업, 신소재산업, IT산업이 융합해야 하는 문화산업이자 가치산업이다. 또한 원석부터 완제품에 이르는 생산과정과 독자 브랜드에 의한 판매가 한곳에서 이루어진다면, 일반 산업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큰 부가가치가 생긴다. 때문에 벨기에의 연간 귀금속보석 수출액은 한국의 연간 자동차 수출액과 비슷하다. 자본과 기술력만 있으면 원재료의 생산여부와 상관없이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자체 금 생산력이 연간 10톤에도 미치지 못 하는 이탈리아는 매년 400톤 이상의 금장신구를 수출해 유럽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은 귀금속보석산업을 단순한 기술산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세계시장에 대응하는 발 빠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익산 귀금속보석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 이유도 이와 같은 선에 있다.
그렇다고 귀금속보석산업의 미래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국내 보석가공명장 1호인 김찬 명장(익산 영등동)은 "아직도 한국의 보석가공기술과 디자인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 다만 우리 브랜드가 없기 때문에 하청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 명장의 말처럼 핵심 과제는 브랜드 개발이다. 세계화된 경제구조에서 상품의 브랜드 이미지가 국가 이미지를 초월한 지는 꽤 된다. 소비자에게 티파니, 카르띠에, 불가리 등 브랜드가 어느 국가 브랜드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브랜드 개발을 위해서는 먼저 자본과 기술력이 겸비된 선도기업이 육성돼야 한다. 브랜드 개발은 오랜 시간 자본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진행되어야 할 일은 새로운 산업집적화이다. 원석가공과 완제품 생산, 그리고 유통과 판매가 같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새로운 집적지(클러스터)가 한국 귀금속보석산업의 핵심 경쟁력을 이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익산시에서 2004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귀금속보석산업클러스트' 조성사업은 꽤 중요한 시도다.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 등 인근의 관광자원과 귀금속보석산업을 연계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이 사업은 2010년까지 총 사업비 190억 원을 들여 익산시 왕궁면 일대에 전시판매센터와 보석가공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기본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기존 귀금속보석산업단지의 구조를 고도화 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낡은 귀금속보석산업단지의 택지를 매입해 다른 용도로 개발하고, 기존 입주업체는 새롭게 조성되는 보석가공단지로 이전, 경쟁력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이러한 청사진과는 달리 해결해야 될 것도 많다. 다른 지역보다 뛰어난 입지조건을 제시해야 하는 것. 그래야 경쟁력 있는 업체를 많이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하나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업계의 이해관계를 원만히 조정해야 한다는 것. 유독 관련 협회와 단체가 많고, 소규모 업체들이 많은 업계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을 딛고 익산이 보석도시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여부는 앞으로 불과 몇 년 안에 결정될 것이다.
/최기우 문화전문객원기자(극작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