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성과 악성의 운명적 만남
스물한살의 차이가 나는 괴테(Johann Wolfgao von Goethe, 1749~1832)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1)은 서로 서신 연락을 했고 베토벤 43세, 괴테 64세 때인 1812년 여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사교장소라고 알려진 온천지 테플리츠에서 직접 만났다. 그들은 산책하며 서로 자신의 예술관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즉흥연주에 능한 베토벤은 괴테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비판적이며 외교적, 정치적 수완이 능한 괴테와 자유를 사랑하고 인간애를 중시하며 공화정을 지지하는 이상주의자인 베토벤은 서로 잘 맞지 않음을 알았다.
괴테는 베토벤의 재능은 인정했으나 베토벤 음악의 진가는 이해하지 못했다. 괴테가 그의 음악조언자인 젤터(C.F.Zelter, 1748~1832 : 제2 베를린 악파에 속하는 작곡가)에게 보낸 편지에 그 같은 토로가 있다.
"베토벤의 재능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감스럽게도 자제할 줄 모르는 성격인 것 같았습니다. 하기야 그는 잘 듣지 못하니 그에게 아량을 베풀며 동정해야 하겠지요." 베토벤이 청력장애 때문에 꽤 신경질적인 때였나 보다.
괴테는 문학뿐 아니라 정치, 철학 등 많은 분야에 해박했으나 음악에만은 이해가 좀 부족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자신의 시에 곡을 붙인 슈베르트의 명곡 <마왕> 을 듣고서도 시큰둥 했다지 않던가? 베토벤도 괴테를 만난 후 적잖이 실망했음을 토로했다니 산책하며 나눈 그들의 얘기가 궁금하기도 하다. "시와 음악은 하나이어야 한다."는 얘기였을까? 인간의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완전하고 위대한 곡으로 칭송받는 베토벤 9번 <합창> 교향곡 피날레에서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ode an die freude)> 를 독창과 합창이 노래하는 음악을 듣노라면 베토벤은 시 운율에 대한 감각도 천재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환희의> 합창> 마왕>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는 31살의 짧은 생애동안 괴테의 시 59개를 비롯한 많은 시에 600곡이 넘는 예술가곡을 작곡하였다. 뮐러의 연작시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와 <겨울나그네> 로는 연가곡을 작곡하였다. 대중노래인 세속리트가 예술가곡 리트가 되는데 크게 공헌한 슈베르트는 그를 중심으로 모인 친구들 모임인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s)에서 함께 책을 읽고, 시를 낭송하고, 술도 마시고, 산책도 하며 시 노래를 즐겼다. 쉴러, 뮐러, 괴테, 하이네 등의 시가 많이 낭송되었다고 한다. 낭만 정서가 가득한 모임이었겠다. 겨울나그네> 아름다운>
트루바두르 전통에서 생겨난 샹송은 프랑스인들의 큰 사랑을 받게 되고 그 사랑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대중노래이던 리트가 독일에서 예술가곡 리트로 재탄생하자 이에 질세라 프랑스에서도 샹송을 더 품위있게 재탄생시킨 멜로디(Melodie)가 19세기에 나타난다. 베를레느, 말라르메, 보들레르 등 프랑스 시인들의 시에 곡을 붙힌 프랑스 예술가곡이다.
시인이자 가수들인 음유시인들이 프랑스와 독일에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이태리에도 있었다. 이태리의 음유시인들은 처음에는 순박하고 간단한 시 노래인 프로톨라(frottola)라는 장르의 노래를 노래했다. 이 프로톨라가 후에 격조있는 노래 마드리갈이 되는 것이다. 스페인에도 비얀시코(villancico)라는 민속노래가 있었고 영국에도 류트(lute)반주가 있는 노래 에어(Air)가 있었다.
낭만시대 음악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예술가곡은 시와 성악, 악기가 조화롭게 어울어지는 시 노래이다. 중세·르네상스시대 시 노래에 동반되는 악기는 가슴에 안고 손가락으로 줄을 튕겨 소리내는 류트이었지만 바로크시대에는 당시의 중심악기이던 건반악기 쳄발로, 클라비코드로 바뀌었고 1709년 피아노가 발명된 뒤에는 피아노가 동반악기로서 가장 사랑받는 악기가 된다.
피아노는 발명초기에는 큰 사랑을 받지 못했으나 하나의 악기에서 화음이나 선율 모두가 가능하여 시의 내용을 더불어 표현해 주기도 하고, 노래를 더 아름답게 치장해주는 등 시의 서정을 한결 도드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서서히 작곡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20세기 초 말러나 슈트라우스는 예술가곡에 동반되는 악기를 피아노에 머물지 않고 관현악과 함께하는 큰 규모의 연가곡을 작곡하기도 한다.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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