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을 거닐고, 섬진강을 그리면서, 어느날 문득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허리 굽혀 자세를 낮추고 보니, 들꽃…. 아무렇게나 피어난 듯 보였지만 한참을 보니 그 곳에 사람살이가 있었다.
매주 목요일 전북일보에 '송만규의 섬진강 들꽃이야기'를 연재하게 된 '섬진강 화가' 송만규씨(55). 복수초와 노루귀, 바람꽃, 양지꽃, 깽깽이 등 섬진강이 안고 있는 들꽃을 그리게 된 그는 "높고, 큰 것에 치여 낮고, 작은 것들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며 "눈에 잘 띄는 그 어떤 꽃보다도 작은 들꽃이 훨씬 더 아름답더라"고 말했다.
"시골에 살며 등하굣길에 거의 매일 들꽃을 봐왔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풀이름, 꽃이름을 다 잊어버리고 살았던 거에요. 70∼80년대는 사람 중심으로 살다보니 자연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는데, 90년대 들어 자연으로 돌아왔다고 할까요? 다시 자연을 접하면서 큰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80년대의 그는 인권운동을 하며 늘 사람들 틈에서 부대꼈다. 현장이 곧 스스로 터득한 삶의 방향이었고, 그림은 오방색으로 그린 페인트 그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때 그림을 보면 내가 저런 그림을 그렸나 싶을 때도 있지만, 아뜰리에에서 그림 그리는 일이 사치로 느껴지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90년대 들어 그는 섬진강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의 표면을 봤고, 다음은 물의 깊이를 봤고, 그 다음에서야 자연이 주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들은 잔잔하고 고요한 듯한 그의 섬진강 그림에서도 강물 속 힘 센 물살을 읽어냈다.
"넓고 깊은 강물과 강너머 높은 산들을 바라보다 이제는 그 밑 작은 들꽃들을 바라보려니 아주 미미하지요. 그냥 스치면 하찮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살피면 아주 앙증맞고 예쁜 자태를 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들꽃이 우리 사는 모습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거죠. 소시민적인 삶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데 말이죠."
올해 복수초가 피자 섬진강변에는 눈이 내렸다. 그렇게 눈과 꽃이 만나는 해가 있고, 만나지 못하는 해가 있다. 봄이 일찍 온 건지, 겨울이 늦게 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내년 3월까지 섬진강가에서 피고지는 한국의 토종 들꽃을 그리기로 했다. 짧지만 들꽃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도 덧붙인다.
"이걸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 어느 때는 들꽃의 색채나 형태가 아름다워 붓 잡기가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수묵화가에게 들꽃은 조선시대 화가들이 그린 것들을 제외하고는 현대에 와서는 통 기억에 없을 정도로 잘 그리지 않는 소재입니다. 그래서인지 내가 한번 해보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서양물감으로 그려진 들꽃이 화려한 색감과 질박한 마티에르로 시선을 사로잡는다면, 먹으로 피어난 들꽃은 소박함과 단아함으로 마음에 스며들 것이다. 손톱 보다도 작은 들꽃의 일부를 그릴 때면 세필로 섬세하게 묘사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회화적 요소를 표현할 때에는 과감하게 넓은 붓도 쓸 생각. 그는 "전통기법에 현대적 감성을 적용하고 싶다"며 "먹과 색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들꽃을 그리다 보니 자연에서 질서를 보게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 질서라는 것은 높낮이가 아닙니다. 통치하고 다스림이 없는, 평등하면서도 자유로운,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 그런 것들이 자연의 이치인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동양사상 공부를 시작하며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의미에 대해 그가 들꽃으로 묻는다.
완주가 고향인 그는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의장, 전국민족미술인협의회 중앙위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전북지회장 등을 지냈으며, 2002년부터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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