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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풍패지관(豊沛之館) - 조상진

전주는 역사적으로 후백제의 도읍이요, 조선의 발상지다. 그 자취와 정신이 연면하게 이어져 오늘날 전주의 정체성을 이룬다. 견훤이 세운 후백제는 안타깝게도 45년만에 멸망했다. 그래서 동고산성을 제외하고 그 흔적이 많지 않다. 또 10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반면 조선의 영향은 크다. 호남을 관할하는 수부(首府)인데다 조선왕조의 관향(貫鄕)이어서 힘이 실렸다. 지금 전주시가 추진하는 전통문화중심도시도 결국 조선문화에 뿌리를 두고 그것을 산업화하자는 것이다.

 

조선의 문화는 유·무형으로 곳곳에 남아 있긴 하나 목조 건축물은 귀하다. 경기전과 풍남문, 객사 정도다.

 

관립호텔격인 전주객사(보물 제583호)는 조선 초기 전주부성을 축조할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전라감영(구 도청부지) 북쪽의 넓은 대지에 세워졌으며 중앙에 주관(主館)이 있고 좌우에 날개채(익헌), 맹청, 무신사 등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다. 후원(造山)까지 거느린 꽤 큰 규모였다. 주관과 서익헌만 남아 있다 얼마전 동익헌까지 복원되었다.

 

신주를 모신 감실에는 궐(闕)자가 새겨진 위패를 모셔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예(望闕禮)를 올렸다. 조정에서 사신이 오면 이곳에 머물면서 왕의 명령을 전하기도 했다.

 

주관 앞에는 풍패지관(豊沛之館)이란 글씨가 눈길을 끈다. 규모도 클뿐 아니라 초서체로 흘려 쓴 기품이 호방하고 힘차다. 명나라 문장가 주지번(朱之蕃)의 작품이다. 풍패는 한(漢)고조 유방의 본향으로 조선 왕조의 발원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이 여기 걸리기 까지의 사연이 흥미롭다. 주지번은 1606년 중국의 황태손이 탄생한 경사를 알리기 위해 외교사절단을 이끌고 조선을 방문했다. 한양에서 칙사대접을 받고 일이 끝나자 마자 익산 왕궁에 살고 있는 표옹(瓢翁) 송영구를 만나기 위해 전주에 내려왔다. 이때 잠시 객사에 머물며 이 현판글씨를 써준 것이다.

 

이에 앞서 송영구는 1593년 송강 정철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갔다 시골청년 주지번을 만났다. 이때 과거시험 답안작성요령 등을 가르쳐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

 

문화재청이 '전주객사'이름을 '전주 풍패지관'으로 바꾸기로 했다. 원래 건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 이름을 찾아주자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냄새가 나긴 하나 고려해볼만 하다.

 

/조상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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