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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연초록 산길에서 - 양은용

양은용(원광대 한국문화학과교수)

 

더워진 날씨 덕분에 봄을 건너뛴 여름이 왔다고 아우성이다. 그래도 아파트 베란다의 화분들은 새싹을 틔어 멋을 부리고, 길가에 늘어선 수양벚들은 아직도 게으른 꽃망울을 수줍게 드러내고 있다. 도회지라고는 해도 눈을 들면 멀리 푸르러가는 들녘을 바라볼 수 있으니 복받은 삶이 아니겠는가.

 

모처럼 도립공원을 찾았다. 산과 들이 수채화처럼 명랑하여 마음가득 신선함을 안고 있는데, 막상 공원입구에 들어서니 감탄사가 절로 나와 그치질 않는다. 온 산을 덮은 연초록이 이렇게도 고왔던가. 콸콸 흘러내리는 냇물을 따라 절과 폭포, 그리고 산봉우리에 이르는 길이 길게 이어졌고, 그 길을 사람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그야말로 인파가 구름같다.

 

계곡의 물빛 같다더니 그런 계곡에 송어떼가 그득하다. 수십길의 암벽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데, 그 아래 못에는 송어인지 잉어인지 구별할 수도 없는 팔뚝만한 고기들이 빨갛고 노란 자태를 뽐내며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동행인 아우가 초록 잎사귀를 돌돌 말아 건네며 묻는다.

 

「첫사랑의 추억은 어떤 맛인지 아세요?」

 

「씁쓸하다고 할까, 안타깝다고 할까, 그런 것인지 몰라.」

 

「이거 라일락 잎인데, 질근 깨물어 보세요. 첫사랑의 추억을 안겨드리죠.」

 

그러면서 먼저 돌돌 만 잎사귀를 어금니로 잘근 깨물어 씹는다. 얼떨결에 따라서 씹다가 「아차」싶어 멈추었는데, 이미 어금니에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쓴맛이 솟는데, 라일락 잎새는 이빨에 달라붙어 침샘을 자극한다. 첫사랑의 추억은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일행이 한동안 쓴맛으로 치를 떨고, 그러면서도 함박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가만히 살펴보니 아우는 라일락 대신 매화잎을 잘근잘근 싶고 있다.

 

꽃이 진 자리에 돋아난 잎새는 어느 나무랄 것 없이 풍성하다. 이팜나무며 영산홍은 아직 꽃잔치가 한창인데, 군데군데 단풍나무며 줄지어 늘어선 아름드리 메타세콰이어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서 있다. 팻말에 음이온을 소개하는 광고판이 요란하다.

 

운동화를 신고 왔지만 걷기가 편하다 싶었더니, 앞에 오는 일가족이 신발을 들고 맨발로 걸어오고 있다. 넓은 길이 부드러운 모래로 가득 채워져 있으니, 신발을 신어도 좋고 벗어도 좋을성 싶다. 날씨까지 화창하고 길은 터널숲을 이루고 있으니, 모자를 써도 좋고 벗어도 무방하다. 산길을 이렇게 잘 다듬어 놓을 수 있을까.

 

계곡의 건너편은 통나무며 판자를 이어부친 나뭇길이 조성되었는데, 군데군데 안내판을 두고 하염없이 계속되고 있다. 절 입구까지는 상당한 거리인데도 한 걸음에 달려온 듯싶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어느 것에도 모두 손님맞이를 위한 정성이 배어 있다. 유학기간을 포함하여 외국에 드나든 것이 수가 없는데, 그 어느 나라의 관광지에도 보기 어려운 따뜻함이다. 우리나라의 수준이 여기까지 왔는가 싶다.

 

이와같은 산야의 아름다움에 이처럼 정성으로 쏟는다면 관광을 즐기려는 사람이 모여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의 감탄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일행 중 한 사람이 말한다.

 

「지자체 선거철이잖아요?!」

 

/양은용(원광대 한국문화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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