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또 이렇게 괴롭고 치열하게 작품에 임해볼까 싶어요. 제 인생의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될 중요한 작품이에요."
오는 28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벚꽃동산'에 여주인공인 라넵스카야 부인 역으로 캐스팅된 이혜정의 말이다.
이 연극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연출가 그리고리 지차트콥스키가 연출을 맡아 선보이는 체호프의 마지막 작품이다.
지차트콥스키는 지난 1월 내한, 오디션을 통해 국내 배우들을 직접 뽑았다. 원로배우 신구까지 예외가 없을 정도로 철저한 오디션을 벌여 이상적인 배우 찾기에 나섰던 그는 이번 출연진을 '최고의 캐스팅'이라고 자부한다.
특히, 흔히 노부인으로 그려지는 라넵스카야를 17살 딸을 둔 젊은 부인으로 뒤집어 30대 여배우에게 맡긴 캐스팅은 눈길을 끈다.
2004년 '갈매기', 2006년 '아버지'에 이어 지차트콥스키와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이혜정은 "지차트콥스키는 배우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게 해 에너지를 끌어내는 연출가"라며 "여러 번 작업하면서 익숙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번이 더 힘들다."라고 말했다.
"연습하고 작품을 만드는 동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치열해요. 자신의 바닥을 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죠. 남자 배우들도 눈물을 보일 정도로 힘들고 단 한 순간도 해이해질 여유가 없어요. 하지만, 연극을 가장 신성하고 심오한 것으로 여기면서 연극이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해요."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이혜정은 지차트콥스키 연출의 '갈매기'에서 니나 역을 맡아 연극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지차트콥스키는 "내면에 불이 있다."라며 연기에 대한 이혜정의 열정을 높이 사 과감하게 캐스팅했다.
이혜정은 "그때 나의 부족함을 깨달았고 작품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혹독하게 배웠는데 이번 역은 열 배는 더 어렵다."라며 "지금은 내 안에서 인물을 어떻게 끌어내서 만들어야 할지 창조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벚꽃동산'은 '갈매기', '세자매', '바냐 아저씨'와 함께 체호프의 4대 장막극으로 꼽히는 작품. 경제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도 과거의 낭비벽을 버리지 못하는 여지주 라넵스카야 부인과 주변인물의 갈등이 중심이 된다.
그는 "낭비벽이 심하고 단순한 귀족의 삶에서 벗어나 용감하고 자존감이 강한 여자로 표현하려 한다."라며 "배우들이 솔직한 몸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역동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온갖 고통이 자신의 죄 때문이며 그게 삶이라고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여자인데,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공감하려고 고민 중입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인생을 진지하게 그리고 있어요."
여러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섰던 그는 영화와 드라마 OST에도 참여한 가수이기도 하다. 최근 결혼한 톱스타 장동건, 고소영이 1999년 함께 출연한 영화 '연풍연가'의 주제가인 '우리 사랑 이대로'에서 주영훈의 듀엣 파트너로도 참여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순결했던 시절, 이혜진이라는 예명으로 노래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처음부터 연극 생각밖에 없었는데, 우연히 접한 노래가 제2의 인생이 됐죠.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코믹음악극 '테너를 빌려줘' 등을 선보인 극단 코러스의 대표는 현재 그의 또 다른 역할이다. '갈매기' 공연을 계기로 배우 윤주상과 연출가 함영준 등이 지차트콥스키와 무대미술가 에밀 카펠류쉬 등 러시아 연극인과의 교류를 목표로 만든 극단이다.
그는 "배우로서 극단을 경영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벚꽃동산'을 하면서 몇 달 동안 극단 일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있다."라며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내가 영원히 갈 길은 배우의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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