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전인 1500년대 중반에 살다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사대부가 여성의 미라가 발굴됐다.
최근 들어 조선시대 미라는 연이어 확인되지만 임진왜란 이전 미라는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며 운아삽을 비롯해 사대부가의 장례 습속을 알려주는 장송(葬送) 유물이 거의 온전한 상태로 출토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서경문화재연구원(원장 장명수)은 한국토지주택공사 경기지역본부가 시행하는 경기 오산 가장2일반산업단지 공사 예정지 일대를 조사한 결과 사대부로 보이는 여성 미라가 안치된 조선시대 회곽묘(灰槨墓)를 발굴했다고 13일 말했다.
회곽묘란 목관을 감싸는 덧널을 시멘트 비슷한 회를 반죽해 만든 무덤을 말한다.
조사 결과 회곽묘 안 내관(목관) 덮개 위에는 '宜人驪興李氏之柩(의인여흥이씨지구)'라는 글씨를 쓴 명정이 확인됐다.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은 여흥이씨 가문 여성의 시신을 안치한 관이라는 뜻이다.
'의인(宜人)이란 칭호는 발견된 미라 주인공이 남편의 관직 품계에 따라 정6품 작위를 받은 사대부집 가문에 소속된 부인이었음을 의미한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목관 안팎에서는 백자유개호(白瓷有蓋壺), 운아삽, 목제 빗, 명정, 뒤꽂이(쪽진머리 뒤에 덧꽂는 비녀 이외 장식품) 등 유물 10여 점이 출토됐다. 이 중에서도 백자유개호는 회곽을 안치하기 위해 판 구덩이인 묘광(墓壙) 한쪽 벽면을 굴처럼 뚫어 마련한 곳에서 발견됐다.
출토유물 중 구름과 '亞'자 모양 문양을 넣어 그렸다 해서 운아삽이라고 일컫는 일종의 깃발 유물은 지금까지 같은 종류의 출토품 중에서는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편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라가 발견된 묘는 봉분이 없어진 상태였으며 인근에 남편의 묘가 있었다.
남편 묘는 아직 발굴하지 않았지만 부부 미라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점쳐진다.
연구원 측은 지난 8일 김우림 울산박물관추진단장, 김한겸 고려대 교수팀(미라담당), 권영숙 부산대 교수팀(복식담당)과 함께 현장에서 미라가 든 관을 꺼낸 다음, 고대 구로병원 부검실로 옮겨 조사를 실시했다.
묘 구조와 복식으로 미뤄볼 때 이번에 발견된 미라는 임진왜란 이전 조선시대 여성으로 추정된다고 조사단은 평가했다.
미라는 각종 염습의(殮襲衣) 26점과 보공품 10여 점에 싸여 있었으며 신장은 조선시대 성인 여성 평균키인 154㎝ 정도였다.
의복은 액주음포(腋注音袍), 목판깃, 안감 한지심 등 임란 이전 시기 복식의 특성을 고스란히 갖췄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또 완전한 머리 모양을 갖춘 상태여서 임란 이전 조선시대 전기 여성의 머리 형태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미라 조사를 진행한 김한겸 교수는 "폐 좌우가 뒤틀렸고 얼굴과 몸 전체가 야윈 점을 볼 때 만성질환을 앓다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고려대팀은 미라에서 채취한 각종 샘플 등으로 세균을 배양해 무균 상태에서 미라가 된다는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는 등 병리학적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부산대 연구팀은 출토품 중 복식류를 중심으로 약 1년간 보존처리를 실시한다.
김우림 단장은 "이 정도로 완벽한 복식을 갖추고 상태가 양호한 미라를 만나기 힘들다"며 "이번에 발견된 미라가 조선 전기시대 생활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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