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無酒日 제창 등 세상바꾸기 노력…이리역 폭발 등 대형참사 생생히 다뤄
신문은 '시대의 거울'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다양한 모습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사회의 자화상을 촘촘하게 보여준다.
1950년 전쟁의 포연속에서 도민들의 눈과 귀가 됐던 전북일보는 폐허속의 보릿고개를 민초들과 함께 넘으면서 지역사회 시련과 감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했다. 또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고 도민들의 염원을 담아 지역의 미래와 희망을 힘껏 외치기도 했다.
전북일보가 도민들에게 첫 지면을 선보인 후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뀌었으니 '전북의 타임캡슐'에 농축된 역사의 기록을 꺼내보는 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전북일보 지면에 비친 굴곡의 현대사 60년을 되짚어, 새로운 도약의 기점에 선 전북의 미래를 조망해본다.
◇ 1950년대
△전란속의 전북 알린 전령사
1950년 10월15일 문공부에 등록된 전북일보는 발행 초창기 한국전쟁의 전황을 도민들에게 알리는 '전령사'였다. 전쟁이 발발하자 전국에서 도내로 피란민이 몰려 들었고 토착 이재민만 20여만명에 이르렀다. 전북일보는 '물밀 듯 하는 피란민 군산에만 매일 100여명'(1951년3월16일)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전달했다.
또 취재기자들을 최전선과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현장에 파견, 생생한 전황과 국군의 활약상을 전했다. 휴전후에는 식량부족과 재해로 비참했던 지역의 현실을 심층 보도했다.
△재해 겹쳐 힘겨운 보릿고개
전쟁이 남기고 간 폐해는 처참했다. 당시 식량문제는 특정 지역이나 계층이 아닌 전국적인 문제였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가뭄과 홍수 등 기상재해까지 겹쳤다.
극심한 가뭄으로 시냇물과 방죽조차 모두 말랐고 논밭은 흉측스럽게 변했다. 1956년 여름에는 남원과 장수 지역에 240mm의 폭우가 쏟아져 21명이 사망, 87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본보는 '물과 아우성의 바다'라는 제목으로 참상을 전했다.
식량난은 더욱 악화됐다. 궁핍한 생활은 '보릿고개'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전북일보는 '보리밭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자운영까지 베어 먹는 급박한 사정을 전했다.
△전북일보 무주일(無酒日) 제창
전쟁후 사회가 혼란스럽자 정부양곡과 구호미를 공무원들이 부정 착복하는 사례가 많았다. 식량난에 허덕이는 대다수 서민들의 궁핍한 생활과는 대조적인 일부 계층의 흥청망청한 모습을 전북일보는 '공무원 요정출입 성행'· '융성일로의 유흥가, 전주서만 매일 4백만원 홀랑' 등의 기사로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음주가무가 판치고 공무원 등의 요정 출입이 정도를 넘어서자 본보는 1951년 3월 10일 '무주일(無酒日)'을 제정하자고 제창했다.
△첫 지방자치제 실시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인 지방자치제가 1952년 처음 도입됐다. 1952년 4월25일과 5월10일 역사적인 지방의회 선거가 시행됐다. 도내에서는 4월 25일 전주와 군산, 이리(현 익산) 등 3개 시에서 시의원 선거를 진행, 61명의 지방의원을 선출했다. 또 도의원 선거는 5월10일에 치러졌지만 치안상태가 불안정했던 남원과 순창, 정읍, 완주는 제외돼 46명 정원 중 32명을 뽑았다. 이후 치안상태가 회복된 이듬해 선거를 진행, 14명의 도의원을 추가로 선출했다. 첫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전북일보는 도민들의 투표권 행사를 거듭 독려했다.
◇ 1960년대
△ 곰티재 참사와 모래재 도로 개통
1966년 6월6일 오후 5시께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속칭 '곰티재'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 15명이 숨지고 54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북일보는 사고발생 다음날인 7일 호외를 발행해 안타까운 소식을 도민들에게 알렸다. 곰티재 사고와 관련된 기사는 사고발생 후 한 달여동안 계속되면서 당국의 근본 대책을 촉구했다.
전북지역 산간부의 주요 간선 도로이자 각종 사고가 빈발했던 곰티재도로를 대체하기 위해 1966년 5월 10일 착공된 모래재도로가 1972년 11월17일 마침내 개통됐다.
전북일보는'모래재 도로 드디어 개통'(1972.11.18)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도로 개통의 의미와 기대효과·개통식 상황 등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 통학의 다리 놓기 캠페인
도로와 교량이 열악했던 1960년대에는 교통사고와 익사사고가 잇따랐다.
특히 비오는 날에는 등·하교 하던 학생들이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이에따라 전북일보는 학생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통학의 다리를 놓아주자'는 캠페인을 1965년 7월17일부터 전개했다. 캠페인이 진행되면서 이듬해 6월26일 임실 관촌에서 첫 통학의 다리 준공식이 열렸다.
통학의 다리 준공식은 임실에 이어 고창과 무주 등 도내 곳곳에서 이어졌다.
통학의 다리 놓기 운동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큰 관심을 표시할 정도로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 전주공단과 공업화 바람
전북지역의 공업화는 전주공단 설립에서부터 시작됐고 전주공단 설립은 새한제지 건설로부터 출발했다.
전북일보는 1965년 1월17일 '전주에 새한제지 공장 건립 확정'이라는 기사를 실었고, 그해 6월19일에는 전주시 팔복동 일대를 중심으로 한 공업단지 조성 움직임을 소개했다. 또 1966년 11월 27일 '전주공업단지 본격화'란 제목 아래 5000만원의 보조금이 신년도 예산에 확정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도민들에게 전했다.
전주공단은 1967년 3월 기공됐다. 전주공단 조성사업과 새한제지공장 건설, 화학섬유공장 건설사업 등은 순조롭게 추진됐으며 이들 공장은 전북의 공업화를 앞당긴 주역이었고, 오늘날까지도 전북경제를 이끄는 토대로 평가받고 있다.
◇ 1970년대
△ 호남고속도로 개통
1970년 12월 말 도민의 염원이던 호남고속도로가 개통됐다.
전북일보는 1971년 1월1일자에 '얼마나 그리워했던 꿈이었던가'라고 표현, 도민의 환희를 한마디로 대변했다.
호남고속도로 1차구간은 1970년 4월15일 착공한 이래 개통을 보기까지 250여일이 걸렸지만 태풍과 장마 등 궂은 날씨 탓에 실제 작업일수는 고작 130여일에 불과했다. 또 전북구간(39.4km)에 동원된 연인원만도 47만여명이나 됐다.
호남고속도로 개통은 지역발전을 앞당기는 새로운 전기가 됐다.
△ 유신선포와 전북
1972년 10월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특별선언'을 발표, 유신적 정치체제 개혁을 단행했다. 전북일보는 특별선언 발표일로부터 박 대통령 취임에 이르기까지 유신의 배경과 도내 유신촉진대회 상황, 국민투표 등의 진행상황을 연일 1면과 사회면 주요기사로 상세하게 보도했다.
그해 11월21일로 확정된 유신헌법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전북일보는 11월18일, 전북지역 투표인수가 모두 115만2919명(남 56만0911명, 여 59만2008명)으로 확정됐다고 보도했다.
11월23일에는 유신헌법안 개표관련 소식을 전하고 24일과 25일에는 유신헌법 확정 공표 내용을 비롯, 도내 투표율과 찬성률 등을 상세하게 보도했다.도내에서는 총 유권자 115만2919명 가운데 부재자 투표 4만6790명을 포함, 모두 108만6542명이 투표해 참가해 94.2%의 투표율을 보였다.
△ 이리역 폭발사고
1977년 11월11일 밤 9시10분께. 이리시(현 익산) 창인동 이리역 구내 입환 4호선에 정차 중이던 폭발물적재 열차가 폭발, 시가지를 삽시간에 폐허로 만드는 사상 최악의 참사를 빚었다.
당시 인명피해는 사망 56명, 실종 2명, 중상 184명, 경상 1158명이며 재산피해는 7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재민은 무려 1만명에 달했다.
전북일보는 사건경위 및 피해, 사망자 명단을 게재 하는 등 한달 이상 집중 보도하면서 도민들의 이해를 도왔고 끊임없이 사고 원인을 파고 들었다.
사고차량은 인천시에 있는 한국화약 주식회사의 화학약품인 다이너마이트 흑폭약, 뇌관(36상자) 등 1139상자의 폭발물을 싣고 인천에서 출발, 광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폭발사고의 원인은 호송원이 만취한 채 촛불을 켜고 자다가 불이나 발생한 것으로 밝혀져 시민들을 경악케했다.
폭발사고 이듬해인 1978년 3월30일에는 익산∼ 대전 구간 호남선 복선 개통식이 익산역 광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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