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 물금의 낙동강변 4대강 살리기 사업구간에서 최근 확인된 제방은 조선시대 전기에 처음 축조한 시설이 아니라 최소한 이미 12세기 초반인 고려시대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제방은 각종 문헌기록에는 자주 등장하지만 실체는 이미 사라졌다고 간주된 '황산언'(黃山堰)임이 확실시되는 데다, 고고학 발굴을 통해 확인한 고려시대 첫 제방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한국 고대의 치수(治水) 정책의 실상을 알려주는 획기적인 발견으로 평가된다.
매장문화재조사 전문기관인 (재)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원장 신용민)은 '4대강(낙동강) 살리기 하천환경정비구 사업구간'인 양산 증산리 유물산포지 1구간에 대한 발굴조사 일환으로 시굴조사를 통해 이미 존재를 확인한 토석혼축(土石混築)의 제방 유적을 본격 발굴한 결과, "제언(堤堰.제방) 축조의 상한시기는 12세기 초로 추정된다"고 21일 말했다.
조사단은 그 증거로 제방 정지층에서 12세기 초반으로 편년(編年. 연대 매기기) 가능한 청자해무리굽 완편 1점, 외벽 기단부에서 청자종지 1점이 출토된 점을 들었다.
조사단은 지난해 12월 이곳 발굴현장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시굴조사 결과 낙동강변을 따라 725m 구간에 걸쳐 폭 5m, 높이 2m 정도인 제방을 확인했으며 "출토유물로 보아 이 제방은 15~16세기 조선시대 전기에 처음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 제방이 바로 황산언일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했다.
조사단은 그러나 최근 발굴 결과, 제방에서 육지 쪽으로 들어간 강안 평야지대에서는 신라말~고려초기 이래 모두 세 시기로 연대 분류가 가능한 문화층의 각종 유적과 유물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따라서 조선시대 각종 문헌에 등장하는 황산언이 이미 최소한 고려시대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발굴된 유물 중 나말여초 시기에 속하는 제1기 문화층에서는 초석 건물터 4개 동을 비롯해 청자해무리굽완편, 편병, 주름무늬토기편 등 유물이 확인됐으며, 중심연대가 12세기로 판단되는 제Ⅱ-1기 문화층에서는 치평원보(治平元寶. 1064~1067년)라는 동전 등의 유물이, 제Ⅱ-2기 문화층에서는 14세기를 제작시기로 볼 수 있는 각종 청자류가 나왔다.
Ⅲ기 문화층에서는 정확한 용도를 가늠하기 힘든 각종 구덩이 유적이 확인되고 15~16세기에 집중 등장하는 분청사기류가 다수 수습됐다.
따라서 조사단은 "제방 축조 이전에 제기 문화층이 먼저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다음으로 제방과 제Ⅱ기 문화층이 (동시에) 조성됐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조사단은 각종 문헌기록을 고려할 때 "금번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고려시대 건물터 등은 황산역(黃山驛)과 관련된 부속시설 및 생산시설의 일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황산역이란 이번 발굴대상지가 포함된 양산 물금 지역에 설치된 역참(驛站)시설로,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이미 고려시대(高麗史)에도 있었다는 기록이 고려사(高麗史)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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