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덕(전주대 교수)
지방자치제의 시행은 보편적이고 획일적인 중앙 중심의 문화 분배로부터 독창적이고 자주적인 지역 문화를 낳게 한 문화사적 의미를 갖는다. 지방자치 20년은 지역민들 스스로 삶을 영위하는 지역의 문화 주체임을 자각하고, "관(官)에서 민(民)으로" "중앙에서 지방으로" 문화독립을 꿈꾸는 과정이었다. 때로는 갈등하기도 하고, 또 대립하면서도 지역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각자 그려왔던 지역 문화를 위해 헌신한 시간이기도 했다.
'관'과 '중앙'은 끊어 내어야 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자양분으로 인식되었다. '민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점차 '필요악' 쯤으로 간과되기도 했고, 새로운 문화 권력의 탄생으로 곡해되기도 하였다. 지역 문화의 점진적 발전에 동의하면서도 '관-민'의 긴장감은 계속되고 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고 더 많은 무엇을 얻기 위한 줄다리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관과 민'에 대한 이분법적 평가와 구별은 '전문성'에 있다. 민선 15년의 역사 속에서 '관=비전문가, 민=전문가'라는 등식은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이 지난 15년 동안 '관'에서 활동해 왔고, 이제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전문가 표현이 우스개 소리로 들리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어쩌면 관-민의 구분은 그저 자기가 속한 공간의 문제인지 모른다. 지역 문화의 독립을 위해 관ㆍ민이 협력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 문화에 대한 관과 민의 상호 인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올해, 전북문화재단이 출범할 것이라고 한다. 전주문화재단과 익산문화재단에 이은 세 번째의 문화재단이지만, 도(道) 문화재단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쏠리게 하고 있다. 재단설립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어떻게' 하느냐의 지점에서는 각자의 생각을 담아 풀어내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는 이사장이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독립성과 전문성 역시 이사장이 누구냐에 따라서 평가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사장이 '관'인지 '민'인지 하는 문제는 독립성ㆍ전문성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립성과 전문성의 확보는 이사장이 누구이든 시스템을 보장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관ㆍ민의 이분법적 사고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좁혀질 수 없는 평행선이 이어질 것이다.
민선 5기가 시작되었다. 4명의 민선 자치단체장이 '지역의 발전'을 위해 일해 왔다. 성과와 평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관선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민선은 가야할 길이지 봐서 포기할 수 있는 길은 아닌 것이다. 16살 민선(民選) 5기는 지역의 문화 독립을 꿈꿔야 하는 시기이다. 성년의 독립을 이루기 위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올해 전북문화재단 뿐만 아니라 풀어야할 숙제는 많다. 예산과 사람 타령만을 하는 관의 고질적인 인식 못지않게, 문화 독립을 꿈꾸는 16살 청년이 버려야 할 것과 품어야 할 것도 많다. 무슨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독립을 꿈꿀 것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그저 밥그릇 싸움쯤으로 지역의 문화판을 재단하지 말자. 우리끼리 다투고만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홍성덕(전주대 교수)
▲ 홍성덕 교수는 전주생, 전북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대학, 행안부 국가기록원, 전북대박물관을 거쳐 현재 전주대학교 언어문화학부에 재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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