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헨지는 영국 남부 윌트셔(Wiltshire) 주 솔즈베리 평원(Salisbury Plain)에 있는 선사시대 유적이다. 남태평양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과 함께 인류 거석문화를 대표한다. 1986년 에이브버리(Avebury) 거석 유적과 함께 묶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누가, 왜 거석을 세웠는가?
스톤헨지(Stonehenge)는 앵글로 색슨 시대(5~11세기) 영어로 '공중에 걸쳐 있는 돌'이라는 뜻이다. 납작하고 평평한 직사각형 거석을 나란히 세우고 그 위에 또 그만한 크기의 돌을 가로로 걸쳐 놓아 붙여진 이름이다.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도랑과 둑, 여러 개의 환상열석(環狀列石)이 동심원을 이룬 형태다. 중앙부에는 높이 7m, 무게 45t에 달하는 거석들로 이루어진 삼석탑(三石塔, Trilithon) 5쌍이 말발굽 모양으로 자리해 있다. 또 동심원 가장 안쪽에는 제단으로 추정되는 돌이 놓여 있고, 동심원 밖에는 북동쪽으로 힐스톤(Heelstone)이 외떨어져 자리한다.
스톤헨지의 조성 시기는 기원전 3천 년부터 기원전 1천600년 사이로 보고 있다. 한번에 전체를 완성한 게 아니라 수백 년의 시차를 두고 바깥에서 안으로 좁혀오면서 돌을 세우고 재배치해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됐다. 현재 남은 것은 원형의 절반가량이다. 아무리 크고 단단한 돌이라 해도 장구한 세월을 비켜갈 수 없었다. 일부는 풍화로 무너져 내리고 또 일부는 인근 주민들이 가져다 건축자재로 쓰거나 농장을 조성하는 데 이용했다. 수세기 동안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방문객들이 아무런 제지 없이 돌 위를 오르내리는 통에 훼손이 더 심했다. 방문객 중 일부는 망치로 돌을 깨뜨려 그 조각을 가져갔다고 한다.
환상열석 중 가장 바깥쪽은 사암들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 중남부에 산재하는 사암인 사르센(Sarsen)을 직사각형으로 다듬어 빙 둘러 세운 다음 그 위에 돌을 올려놓았다. 사르센의 산지는 스톤헨지에서 약 32㎞ 떨어진 말보로 구릉지대(Malborough Downs)로 알려져 있다.
사르센 안쪽은 블루스톤(Bluestone) 서클이다. 사르센보다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청석(靑石)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엔 수십 개의 청석이 삼석탑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었지만 수천 년이 지나면서 지금은 전체의 3분의 1 정도만 남아 있다.
스톤헨지의 조성 목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에 관해 숱한 가설이 나왔지만 아직 확실하게 입증된 것은 없다. 선사시대 공동묘지, 춤과 음악을 위한 공연장, 처형장, 고대 켈트족의 신전, 다산을 기원하는 상징물 등 주장이 분분하다. 그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해와 달의 움직임, 즉 천체를 관측하던 천문대라는 주장이다. 이는 힐스톤과 환상열석을 잇는 직선이 하지(夏至)에 태양이 뜨는 지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최근 수년 간의 연구 성과 중에는 거석의 치유력을 믿은 병자들의 순례지라는 주장이 주목을 받았다. 연구진은 스톤헨지 부근에서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은 장애인과 부상자들의 매장 흔적이 발굴됐고, 치아 분석 결과 절반가량이 외지인이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실제로 블루스톤 서클을 이루는 웨일스산 청석은 로마와 중세 시대에 병들고 다친 이들을 낫게 하는 치유의 돌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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