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니라. (난초4)
바람이 소슬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별)
가람 이병기(1891-1968)의 주옥같은 시조다. 초중고 교과서에 실리거나 가곡 등으로 작곡돼 널리 애송·애창되고 있다.
국문학계의 큰 별로 존경받는 가람은 3복(福)을 가졌다고 자처했다. 술복과 난초복, 제자복이 그것이다. 그는 청탁(淸濁)을 불문했고 말년에 뇌일혈로 10년 동안 쓰러져 누운 것도 술 때문이었다. 또 그는 난초를 무척 사랑했고 수많은 난초를 길렀다. 난초에 관한 명수필과 시조도 다수 남겼다. 제자복 역시 많아서 국문학계의 쟁쟁한 학자들과 시인들을 키워냈다. 선비다운 풍류와 인간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진짜 업적은 따로 있다. 가람은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는데 앞장섰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또 묻혀있던 우리의 고전작품을 발굴해 냈으며 판소리 연구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현대시조 증흥에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음은 익히 알려진 바다.
이런 가람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생가(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가 무너지고 깨져 흡사 폐가처럼 되었다고 한다. 한쪽 담장이 무너지고 건물 곳곳에는 거미줄과 곤충 사체가 즐비하다는 것이다. 뒷뜰 대나무숲도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다고 한다.
익산시는 5년전 이곳에 가람문학관을 건립하고 이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예산타령만 할뿐 방치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시 이곳을 '가람시조마을'로 확대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일대 2만㎡의 부지에 130억 원을 들여 시조문학관 건립은 물론 체험관, 테마길 조성 등 한국시조문학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제발 이번에는 헛약속이 아니었으면 싶다. 자랑스런 인물을 번번이 욕되게 해서야 되겠는가.
/조상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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