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11 23:36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문화마주보기
일반기사

[문화마주보기] 낯설음, 그 찰나의 미학 - 김동수

김동수(시인·백제예술대 교수)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라는 개념을 맨 처음 제창한 이는 20세기 초 러시아의 문학비평가 쉬글로브스키이다. 이는 낯익은(familiar) 기존의 습관을 파괴(de)하여 독자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경이로운 감동을 시 속에서 새롭게 맛보고자 함이었다. 시인들은 일상 언어로는 경험할 수 없는 낯선 언어, 곧 표현 형식을 다양하고 새롭게 시도하여 보다 신비롭고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고자 노력한다. 인간의 지각이 일상의 친숙한 것들보다 낯선 것에서 더 미학적 가치를 느낀다는 것에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만든 단순한 생소함이나 당혹스런 충격만을 앞세운 것은 아니다. 낯설고 새로운 것 속에 웅크리고 있는 비의(?義), 그것이 감동의 요체이다. 그러기에 찰나의 움직임을 영원화하고 무한의 고요함을 찰나의 움직임으로, 그러면서도 장황하게 서술하는 전체가 아니라 특수한 구성으로 압축된 낯설음이어야 한다. 이처럼 독특한 언어 구성을 통해 시인들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비약되고 평범한 듯하면서도 비범한 언어 형식으로, 사물을 새롭게 보면서 그 속에서 경이로운 감동을 만나게 된다.

 

'당신에게서 구겨진 물들이 걸어 나온다.'( -조연호, 「사라진 그녀들」 부분) 난해한 듯한 이 싯구 또한 '당신이 얼굴을 찡그리며 운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를 슬쩍 '구겨진 물(고통으로 일그러진 눈물)'들이 '걸어 나온다(흘러내린다).'로 시적 변용(deformation)을 하고 있다. '낯설게 하기'란 이같이 갈 수 없는 길을 가고, 가능하지 않은 일들을 꿈꾸기에 그 길은 언제나 낯설고 새로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원시림이 되기도 한다.

 

초여름 밤 무논에서 /개구리들이 목청껏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소리로 엮은 새끼줄이 팽팽하다// 갑자기 왼쪽 논 개구리들의 환호성/소리 폭죽을 터뜨린다.//방금/오른 쪽 논의 개구리 소리줄이 왼쪽으로 기울었나 보다 - (강명수, 「줄다리기」 전문)

 

경험적?객관적 세계가 아니라 순수 직관으로 전회(轉回)하여 자기 느낌에 충실한 동심이다. 이런 점에서 시란 평소 삶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다른 형식의 언어, 곧 '낯설게 하기'로 창작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일상에서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들보다 존재의 모습을 낯설게 하여 일상에서 둔감해진 우리 지각이나 인식의 껍질을 벗고 미적 가치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모더니즘 이후 등장한 이 '낯설게 하기' 라는 문화적 코드는 이제 모든 예술의 지상 명제가 되어가고 있다. 대중음악과 영화, 무용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 전반에까지 파급되어 21C의 성공 코드가 되어 가고 있다. 지식 정보 시대에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맨 처음 간 사람이 남보다 앞서간다. 그러기에 이러한 문화적 코드는 한동안 이 시대를 지배해 가리라 본다.

 

/김동수(시인·백제예술대 교수)

 

▲김동수 교수는 남원 출생으로 전국대학 문예창작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제 PEN 한국본부자문위원과 백제예술대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