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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고전번역, 전주를 주목하는 이유 - 홍성덕

홍성덕(전주대 교수)

가장 잘 더위를 잊는 것은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 어떤 바람도 일에 집중할 때 느끼는 시원함을 대신할 수는 없다. 고된 땡볕 아래의 노동이 냉막걸리 한 잔에 시원해 질 수 있는 것도, 그것이 단순히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학기 동안 개인적으로는 일에 집중한 시기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번역했고, 우리나라 고전번역을 주도하는 한국고전번역원(옛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고전번역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점차 줄어드는 고전번역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권역별 협동번역 거점연구소" 지정 사업을 30년이라는 장기계획으로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12년 전, 전주에 고전번역원 분원이 설치된 이래 지금까지 지방에 고전번역 교육기관이 설치된 지방 도시는 전주가 유일하다. 전주교육원 설치 하나 만으로도 전주는 고전번역자들 사이에서 때로는 질시의 대상으로 때로는 선망의 눈길을 받는 도시로 성장해 왔다. 호남권 협동번역 거점연구소의 지정이 "광주"가 아닌 "전주"(전주대 인문과학종합연구소)였던 것은 이런 모든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권역별로 중형ㆍ소형 각 1개소의 연구소가 지정되어 추진하는 이 사업은 3단계에 걸쳐 각 10년씩 번역과제를 수행하게 된다.

 

번역은 전문 연구자들이 하기를 꺼려하는 분야 중의 하나이다. 디지털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번역도구들이 발달하기도 했지만, 한문으로 쓰여진 선학들의 글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논문을 쓰는 것보다 몇 배의 공력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기가 넘치는 사람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채 묵묵히 자신과 싸워야 하는 번역에 적합하지는 않다고들 한다. 세상사에 담을 쌓고 번역에 몰입할 때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거점연구소의 지정 이후 전국에 있는 내놓으라는 대학연구소에서 전주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번역방법, 주간ㆍ월간 몰입번역, '몰입번역'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전주는 번역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번역 전주교육원과 전주대 거점연구소(한국고전학연구소)는 향후 30년 고전번역의 메카로서 전주가 성장할 수 있는 잠재된 두 축이 될 것이다.

 

고전번역에 있어 전주는 불모지에 가깝다. 80년대 고전번역서 시리즈가 전주대에서 발간된 이래 잠잠하던 번역은 2009년 ??국역 여지도서??(전 50권)의 간행으로 재점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전통문화도시의 면모를 읽을 수 있는 번역사업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최근 ??완산지??와 ??경기전의??가 국역된 것은 전라감영의 복원과 태조어진 봉환 600주년 기념사업 등과 같은 전통문화 관련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 그 역사적 근거들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고전의 번역이 얼만큼 중요한 지를 알려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역사수호의 고장, 기록문화의 메카, 한지ㆍ출판의 고장 등 전주를 수식하는 그 많은 말들에 대한 "왜"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들을 한 마디의 말로 대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고전번역이다. "고전번역은 생명을 단축시킨다."고 할 정도로 힘든 작업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힘들다 할 때 묵묵히 앉아서 고전을 번역하는 사람과 그들의 마당이 이곳 전주에 있다는 사실이 전주를 경쟁력 있는 도시로 만들 것이다.

 

/홍성덕(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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