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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댐 담수 10년, 빛과 그림자] ⑧용담댐과 예술가들

물 아래 아직도 그 고향 있을까? 그림이 역사가 되어 흐른다…잃어버린 고향, 용담을 그리는 한국화가 김학곤씨

사람들이 가장 기억하고 있는 풍경-상전면 원월포리 마을. ([email protected])

열여섯에 진안 용담으로 시집왔다는 늙은 할머니는 그의 그림 앞에서 기어이 눈물을 찍어냈다. 징용으로 끌려간 남편을 한없이 기다리던 마을 입구, 시집살이에 남몰래 눈물을 훔쳤던 고샅이 그 속에 있었다. 할머니의 사라진 고향은 이제 그의 화폭에서만 존재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상전면 원월포리마을을 비롯해 용담면 소재지, 안천면의 담배건조장,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던 정천면 오동리 호학마을의 가을, 눈 덮인 상전면 블로티마을…. 지금은 물에 잠긴 진안군 상전면이 고향인 한국화가 김학곤씨(51)는 자신의 탯줄을 묻은 용담댐 수몰지구를 그린다.

 

"당시 우리 부모님이 고향에 살고 계셨는데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고향이 수몰된다고 할 때에는 잘 몰랐어요. 그런데 한 두 채씩 주변 집들이 사라지고, 큰 정자나무가 한 두 그루씩 없어지는데, 다 사라진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더군요. 그 때 고향에 대한 향수만을 가지고는 살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내 고향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은 그림 밖에 없었습니다."

 

용담댐을 막기 전,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해 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는 고향을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관공서에서 나온 사람으로 오해받아 멱살을 잡히면서도 걸음 걸음마다 고향의 구석구석을 눈과 마음에 새겼다. "내 발자국 하나 하나가 여기에 남아 물 속에 묻힌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발품을 팔 수밖에 없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진안군에 의뢰를 했더니 사람들이 이미 사진으로 많이 찍어놨는데 뭐하러 그림을 그리냐고 하더군요. 심지어는 초라한 동네를 보여줘서 뭐하냐, 누워서 침뱉기다 라는 말도 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그림은 그리는 사람이 어떻게 정신을 쏟느냐에 따라 화장실을 그려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는 사람의 기와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림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보통 300호가 넘는 대작인데다가 과감한 필력 보다는 세필로 촘촘하게 반복작업을 하는 일이 많다 보니 팔이 아프고 어깨가 굳어 심지어 세차례나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렇게 1999년 진안군 기획으로 '삶의 고향, 마음의 고향'이란 전시를 열게 됐다. 그동안에도 고향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내놓기는 했었지만, 용담 수몰지구를 본격적으로 보여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2009년 가을에는 서울에서 '삶의 땅, 사라져간 고향이야기-삶의 고향, 마음의 고향'을 주제로 한 '진안 용담댐 수몰 기록화전'을 열었다. 10년 사이 그의 작품은 많이 변해있었다.

 

"단순한 풍경화라기 보다는 기록화성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되도록 속속들이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쓸쓸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고, 집이 한 두 채 가려지더라도 풍성하게 그리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10년 전에는 먹으로만 가을이나 설경 위주로 그렸다면, 최근에는 색을 넣어 생기 넘치는 여름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는 "고향을 잃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기억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마을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한 마을의 오래된 나무를 중심으로 고향을 그릴 생각이다. 용담댐 주변의 현재 모습도 화폭에 옮기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가 그려온 용담 수몰지구 그림들이 한 곳에 모아지는 것. 그래서 수몰민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향은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잖아요. 싫든 좋든, 물질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든 안되든, 언제든지 갈 수 있고 따뜻하게 안아준다면 그것이 바로 고향이지요. 어머니 품과 같은 마음을 제 그림에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타향살이에 위로라도 된다면 더 바랄게 없겠고요."

 

용담댐 담수 10년. 물 아래에는 아직도 그 때 그 고향이 있을까. 그가 그리는 그림이 역사가 되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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