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MBC(사장 선동규)의 '청춘 전북! 맛이 보인다'를 요리하고 있는 유영민 PD(44)는 요즘 미각을 깨우는 책들로 허기를 달래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 10년을 넘겨야 어설픔을 벗어난다는 말을 실감한듯 했다.
"음식이 알면 알수록 어렵더라구요. 이전엔 단순히 '맛있다','맛없다'만 보면 됐는데, 영양을 위한 요리도 있고, 가치관을 드러내는 음식도 있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돼요."
노트를 내보인다. 「미각의 역사」를 시작해 「잡식동물의 딜레마」,「미각의 제국」 등 여러 책을 통해 수집한 고수들의 음식 철학, 제철 음식·슬로푸드 즐기는 법 등이 빼곡히 기록됐다.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 발전이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전북은 매일 '안된다','안된다' 하는 패배주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죠. '낙후된 이 지역의 정체성은 무엇이 돼야 할까.' 이런 고민이 생겼습니다.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전주의 맛을 경쟁력으로 꼽더군요."
음식을 테마로 한 기획은 어쩐지 잘될 것 같았다. 시민들이 맛집에 관한 선호도가 높은 데다, 전북은 맛의 도시이니까 말이다. 기획 취지는 좋은 식자재로 좋은 음식을 만드는 곳을 발굴하자는 데 뒀다. 하지만 맛은 손맛 보다도 신선한 식재료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전엔 아구찜이 맛있으면, 달착지근하다 혹은 구수한 맛이 난다로 밖엔 표현이 안됐습니다. 그런데 10년 넘게 음식 프로를 맡다 보니까, 육수의 밑간을 왜 소고기 국물로 했는 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어요. 좋은 식재료를 보는 안목이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래야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져요."
로컬푸드의 중요성은 여기에서 나온다. 그는 "도시 음식은 세련되고 맛깔스럽지만, 토속 음식은 처음엔 밍밍하고 슴슴하더라도 먹다 보면 정말 깊은 맛이 난다"며 "로컬푸드에 익숙해지면 먹는 즐거움도 커지고, 건강해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전통음식의 맛을 이어가는 장인들, 기존 조리법 대신 새로운 조리법으로 창의적인 음식을 선보인 이들과 함께 로컬푸드와 슬로푸드를 만드는 사람들과 체험 마을이 소개됐다. 물론 그 지역에서 생산된 재료로 하되 다슬기, 부추, 두부 등 작은 것 하나에도 정성이 담긴 집을 발굴하는 데 신경썼다. 특히 지난해 겨울 지리산 매동마을의 가정식 백반은 "정말 끝도 없이 먹어본 밥상"이다.
"민박집에서 지리산 등산객들에게 주는 가정식 백반이었는데요. 곶감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으려니, 상이 들어왔습니다. 그때 먹었던 겨울 김치를 잊을 수가 없어요. 어린 배추에 양념도 조금만 한 것 같은데, 물도 많았고요. 그런데 코에서 '톡' 쏘는 느낌이 있었고, 아삭거렸습니다. 이런 게 '진짜 김치구나' 싶었죠. 아무리 먹어도 짜지 않았구요."
고사리 들깨탕을 설명할 땐 군침이 돌았다. 그는 "가장 연한 제철 고사리를 웃꺾기만 해서 들깨를 넣은 국물에 자작자작해서 만든 것"이라며 "고기 같은 질감이 있으면서 물리지 않는 환상적인 맛"이라고 소개했다.
완주군 안덕마을의 유황 먹인 오리 한방 백숙도 빼놓을 수 없다. 6개월~1년간 유황을 먹여서 키운 오리 한방 백숙은 기가 막혔다. 완주 창포마을 어르신들이 만든 나물비빔밥은 이제는 잊혀진 나물들만을 살려내 내놓은 것으로 새로운 미각을 깨워줬다.
유 PD는 "'청춘 전북! 맛이 보인다'가 음식을 통해 지역민의 자부심을 담은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고 싶다"며 "음식점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로컬푸드·슬로푸드에 접근하려다 보니 프로그램이 다소 심심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테마를 정해 다채로운 상차림을 준비하고 싶다는 욕심이다.
"음식은 단순히 결과물이 아니라 삶이고 문화잖아요. 여기엔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담겨 있다는 뜻이죠. 여러 가지를 테마로 전북 음식의 DNA를 밝혀보고 싶습니다. 음식을 통해 전북이 자긍심을 되찾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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