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1930년대 말부터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어 말살 정책'이 사실상 한일강제병합 이전부터 준비된 것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제 강점기의 어문(語文)교육과 교과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온 허재영 단국대 교수는 "강제병합 이전인 통감시대에 나온 교과서와 교육정책, 관보 등을 살펴보면 일제가 이 당시부터 이미 조선어 말살 정책을 차근차근 준비했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16일 밝혔다.
통감시대(統監時代)는 대한제국이 을사늑약에 따라 설치된 통감부(統監府)의 감독을 받던 1906년부터 1910년 8월 강제병합 직전까지를 말한다.
허 교수에 따르면 이 당시 통감부는 한일강제병합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었고 특히 어문 교육과 교과서 침탈에 많은 신경을 썼다.
학교 교육에서는 일본어를 필수 교과로 삼고 조선어(한국어)보다 더 많이 가르치도록 했고 일부 교과서는 아예 일본어로 교과서를 만들었다.
한일강제병합을 준비하는 단계였던 만큼 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검열도 이 당시부터 많이 자행됐다.
허 교수가 최근 수집해 내놓은 일제의 1909년 교과서 검정 기준에는 '편협한 애국심을 말하는 내용' '일본과 기타 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는 내용' '비분한 글로 최근의 역사를 서술하는 내용' 등이 모두 통제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또 출판물에 대한 금지 및 압수 조치도 많아 '20세기 조선론' '금수회의록(안국선)' '면암(최익현)선생 문집' 등이 모두 금지ㆍ압수 처분을 받았다.
허 교수는 특히 조선어 말살 정책의 단초로 이른바 '일선한(日鮮漢) 혼합 문체'를 들었다.
'일선한 혼합 문체'란 개화기 때 썼던 국한문 혼용체와 같이 주요 낱말은 한자로 쓰고 거기에 토(吐)를 달되, 일본어 가나 문자와 한글을 함께 다는 것을 말한다.
가령 '조선의 역사'를 써야 할 대목에서 '朝鮮ノ(의)歷史'라고 쓰는 식이다.
허 교수는 "이런 '일선한 혼합 문체'는 통감시대 관보에서 무척 자주 보인다"고 지적하고 "강제병합 이후에는 민적지침(民籍指針.인구조사 지침서)을 비롯한 교육용 도서에 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문체는 후일 조선어를 말살시키고 일본어로만 통치할 수 있도록 당시 한국인들에게 일본어를 익숙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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