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햇살이 내리 찌는 무더운 날씨를 피해 뱀사골 계곡의 탐방로를 거닐다 보면 다래덩굴에 온 몸뚱이가 휘감겨 힘겨워 보이는 소나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소나무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거나 덩굴을 밀쳐내지 않는다. 다만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고 가지마다 빼곡하게 솔방울을 맺어 뱀사골 계곡에 나를 대신할 새로운 아들 소나무를 위해 마지막 남은 힘을 쏟을 뿐이다. 인간의 잣대로 잴 수 없는 자연의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순환의 모습이다.
가끔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여름 녹음이 짙어져 있고, 잠시 한눈 판 사이 문득 고개 들어 높아진 하늘을 본 순간 가을의 문턱에 와 있음을 깨닫고는 한다. 누가 굳이 하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따뜻한 햇살, 시원한 바람,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 새들의 지저귐,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함께 철벅이는 갯돌소리까지, 이 모든 것이 자연이고 그저 스스로 그렇게 변화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온갖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행하고 있는, 인위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은 그대로의 현상이 바로 자연일 것이리라.
자연은 사전적인 의미를 헤아리기 전에 우리 곁에 너무나 가까이 있어 그 존재감도, 소중함도 잊혀지는 듯하다. 늘 곁에 가까이 있기에 존재감도, 소중함도 잊게 되고, 그래서 머릿속에서 쉽게 정리될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못한, 단순할 것 같으면서 복잡 미묘해 쉽게 자연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자연을 보호함에 있어 경중(輕重)의 의미를 두는 것조차 오만한 일이겠지만, 국가적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국가에서는 국립공원을 지정·관리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천혜의 자연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하자는 의미이다.
그러나 지금, 여름 피서철 지리산 뱀사골은 야영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쓰레기로 내 놓고 가거나 계곡에서 취사 또는 야영을 하고 출입이 금지된 곳임을 알고도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으로 단속의 눈길을 피해 불법을 서슴지 않는다.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함께 향유해야 할 자연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깊이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그동안 자연과 생태계를 편협하게 이용의 대상으로만 간주해 왔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써 그 결과 인류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 등 심각한 환경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제는 자연을 우리의 목숨을 의지하고 기댈 생명의 원천으로 바라보며, 적어도 자연에 대해 과거와 다른 형태의 도덕적 의무와 책임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자연과의 새로운 윤리적 관계의 정립에 대한 담론들이 좀 더 활발히 이어져야 하겠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인간중심의 세계를 넘어 자연에 대한 존중이 우리 윤리의식의 기본이 되도록 교육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지혜가 모아져야 할 것이다. 특히 국립공원은 자연과 생태계에 대한 윤리 회복의 장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다.
/ 정용상(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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