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법무부가 공개한 형법 개정 시안의 핵심은 법관이 함부로 형량을 줄일 수 없도록 작량감경 요건을 명확히 하고, 인권침해 논란으로 폐지됐던 보호감호제도를 재도입한다는 것이다.
형벌의 종류를 종래의 9개에서 사형과 징역, 벌금, 구류 등 4개로 대폭 축소하는 한편 기존 형법에는 없는 공범 규정을 신설한 것 등도 눈에 띈다.
◆ 작량감경 요건 구체화
개정 시안은 작량감경의 요건을 명확히 규정해 법관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형량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낮췄다.
작량감경이란 범죄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법관의 재량으로 선고 형량을 2분의 1까지 줄여주는 제도다.
기존 형법은 어떤 경우에 작량감경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아 판사에게 '고무줄 판결'을 내릴 여지를 주고, '전관예우'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있었다.
개정 시안은 작량감경 규정을 ▲범행의 동기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때 ▲피해 회복이 전부 또는 상당 부분 이뤄졌을 때등에 한해서만 적용할 수 있도록 그 요건을 명확히 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법원 판결문에 감형 사유로 자주 등장했던 '반성' 혹은 '신체 질병', '우울증', '음주', '부양 자녀 존재', '재범 가능성 낮음', '국가유공자'등의 단어들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또 정치인이나 경제인 등 사회 저명인사가 '국가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판사가 멋대로 형을 줄여주는 사례도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 '보호감호제' 부활
시안에는 살인범이나 강간범 등 흉악범에 한해 상습범ㆍ누범 가중 규정을 폐지하는 대신 보호감호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보호감호제는 재범 우려가 큰 범죄자를 형 집행 후에도 일정 기간 격리수용해 사회 적응을 돕는다는 취지로 1980년 도입됐다가 이중·과잉처벌이라는 지적에 따라 2005년 폐지됐는데 이를 재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인권침해 논란을 막기 위해 보호감호제 적용 대상 범죄를 방화와살인, 상해, 약취ㆍ유인, 강간 등 성폭력범죄, 강도 등으로 한정했다.
또 이들 범죄로 세 차례 이상 징역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거나 형기 합계가 5년 이상인 범죄자가 5년 이내에 다시 대상 범죄 저질러 1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을 때 보호감호가 선고되도록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아울러 징역형의 집행 종료 6개월 전에 법원이 교정 성적과 반성 정도를 고려해 재범의 위험성 여부를 다시 판단하는 '중간심사제도'를 도입해 보호감호 처분자의 인권이 최대한 보장되도록 배려했다.
◆ 형벌제도 대폭 정비
현행 형법은 사형과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벌금, 구류, 과료, 몰수 등 9개 형벌을 규정하고 있지만, 시안은 사형과 징역, 벌금, 구류 등 4개로 대폭 축소했다.
보안처분으로서의 성격도 가진 몰수는 형벌의 종류에서 삭제하는 대신 기타 형사제재수단으로 별도 규정을 마련하기로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실무상 활용되지 않는 금고를 폐지해 자유형을 징역으로 단일화하고, 과료도 실제 활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범죄를 행정벌 등 비범죄화 하는것도 가능하므로 삭제됐다.
자격상실과 자격정지 등 형벌로 볼 수 없는 것들도 폐지됐다.
형법상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인정되는 현실을 고려해 그보다 가벼운 벌금형에 대해서도 집행유예 제도를 도입하되 벌금형의 집행유예 선고 때는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명령, 수강명령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벌금형의 집행유예가 가능해짐에 따라 선고유예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조정했고, 보호관찰 외에 사회봉사명령과 수강명령도 내릴 수 있다.
또 피고인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1년 이하의 징역형 선고 때 집행유예 기간에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 그외 신설된 규정들
시안에는 기존 형법에 없는 정범 규정이 신설됐다.
공범은 정범의 개념을 전제로 성립될 수 있어 정범 규정을 삽입하는 것이 형법체계에 부합하고, 단독ㆍ직접 정범이 가장 전형적인 범죄유형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범죄행위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자도 정범으로 처벌한다'는 규정을 넣어 간접정범의 정범성도 명시했다.
국제 범죄에 대처하고자 폭발물 사용이나 선박ㆍ항공기 납치, 통화나 유가증권위조 등의 범죄는 우리 영토 밖에서 저질러진 경우에도 국내 형사사법기관에서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세계주의 규정도 신설됐다.
사건이나 사고를 방치한 부작위범은 의도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작위범보다 죄질이 가벼울 수 있으므로 처벌을 감경할 수 있도록 했으며, 농아교육의 발달을 고려해 농아자에 대한 형 감경 규정은 삭제했다.
이밖에 고소 또는 고발이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는 피해자에게 범죄를 고백한 경우에도 자수와 동일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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