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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연극 '디너'

참 야릇한 일이다. 좀처럼 단서가 잡히질 않는다. 연극 '디너'(도널드 마글리즈 원작ㆍ이성열 연출)의 프로그램 어느 구석을 눈씻고 찾아도 산울림소극장이 기획했다거나 협력제작했다는 얘기가 없다. 맨씨어터라는 극단이 산울림소극장을 빌려 '디너'를 올린 것일 뿐이다. 산울림소극장이 연극공연을 위해 다른 극단에 대관만 해 주는 일도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특이한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왜 이 연극을 본 후 산울림소극장이 기획ㆍ제작한 작품을 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디너'는 산울림소극장의 이를테면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같은 대표 레퍼토리에서 보이는 '여성연극'(임영웅 산울림 대표는 '여성연극'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으로 분류될만한 작품도 아니다. 연극계에서는 여성의 삶과 아픔을 주제로 하고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인간의 삶을 그린 연극을 통칭해서 '여성연극'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서로 친한 두 부부가 등장하는 '디너'는 여성의 시각을 상대적으로 더 뚜렷이 부각시키지 않는다. 표현하는 방법이 틀려서일 뿐 고통받는 것은 남성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묘사된다.

 

『게이브ㆍ카렌 부부와 탐ㆍ베스 부부는 서로 못보면 안달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두 부부는 가족처럼 지내며 함께 행복하게 늙어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결혼 12년이 넘은 중년의 어느날 탐과 베스가 도저히 서로를 이해 못하겠다며 이혼한다고 난리다. 충격 속에 게이브와 카렌은 '일시적인 증오의 감정일 것'이라며 친구들을 설득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문제는 그 후의 일이다. 헤어진 탐과 베스는 각기 새 사람을 만나 행복에 겨워한다. 게이브ㆍ카렌 부부는 갑자기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삶은 진짜 행복한 것일까? 앞으로도 계속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작품의 연출가로부터 '디너'가 '산울림소극장적 색깔'을 갖고 있는 이유를 찾으려 해 보지만 역시 신통한 답을 얻을 수는 없다. 극단 백수광부 대표인 이성열 연출은 산울림소극장 연출부 출신이다. 그렇지만 최근 그의 행보를 보면 '디너' 연출은 일종의 '외도'다. 이 연출은 '뉴욕 안티고네', '야메의사' 같은 작품을 통해 요즘 고집스러우리 만큼 거대 정치권력이 갖는 속성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스스로가 이번에 '디너' 연출을 맡으면서 "내 인생 최초의 멜로"라고 얘기했을 정도이다.

 

'디너'에서 산울림소극장 작품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유를 굳이 찾아야한다면 '디너'의 제작자인 극단 맨씨어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006년 가을 우현주('디너' 번역 겸 카렌 역할 배우) 대표의 주도로 만들어진 맨씨어터는 창단작품으로 '썸걸(즈)'를 무대에 올리는 등 연극활동을 하면서 산울림소극장의 여성연극을 계승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극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현주 대표는 그 훨씬 이전인 2000년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에 딸 역으로 출연했었다. 우 대표 스스로도 '디너'를 어느 극장보다 산울림소극장 무대에 올리면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전한다.

 

어떤 과정을 거쳐 '디너'가 산울림소극장 무대에 올려졌든 평소 산울림소극장이 기획해 무대에 올렸던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디너' 역시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두쌍의 서로 절친한 중년부부 얘기를 담고 있는 만큼 남녀를 가리지 않고 40-50대 연령층이 보면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많이 있다.

 

연극에서는 중년의 부부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아픔과 증오감을 묘사하지만 비교적 내용은 잔잔하게 전개되는 편. 출연진 모두 자기 역할을 잘 소화해낸다. 특히 절친한 친구인 베스가 탐과 헤어진 후 딴 사람을 만나 삶이 즐거워졌다는 말을 들은 후 마음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카렌의 연기는 눈여겨 볼만하다.

 

'디너'의 작품 홍보자료에 나온 문구가 재미있다.

 

"이 작품은 결혼에 대한 안도감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연극이다. 결혼을 앞둔 사람에겐 미리...애써... 권하고 싶지 않은 연극이다."

 

◆ 연극 '디너' = 원제는 'Dinner With Friends'. 작가 도널드 마글리즈((Margulies)는 이 작품으로 2000년에 퓰리처상 희곡상을 탔다. 1998년 권위있는 미국의 현대창작극페스티벌인 휴마나(Humana)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이후 뉴욕의 오프브로드웨이를 거쳐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호평 속에 공연됐다. 국내에서는 이번이 초연이다.

 

스태프는 ▲번역 우현주ㆍ정호진 ▲연출 이성열 ▲무대 손호성 ▲조명 김창기 ▲음악 김동욱 ▲의상 정경희 ▲분장 백지영 ▲조연출 이성원 ▲기획 최효정.

 

출연진은 게이브 역 박정환, 그의 부인 카렌 역 우현주, 탐 역 김영필, 그의 부인 베스 역 정수영.

 

공연은 19일까지. 공연문의는 ☎ 02-3443-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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