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시인. 백제예술대학 교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는 희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마지막 상황 속에서도 "내일은 다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는 명대사를 남긴다. 눈물을 훔치며 재기를 다짐한 '내일의 태양', 하지만 난 내일보다 '오늘의 태양'을 더 좋아한다. 어제의 실패가 있어도 오늘이 있기에, 아침만 되면 그래서 난 가슴이 뛴다. 창세기의 첫날처럼 눈부시게 솟아오른 '오늘의 태양'이 서늘한 산기운들을 거느리고 또 산을 넘어오기 때문이다.
푸르스름한 새벽이 밀려와 있다. // 어둑한 안개 속에 묻혀 / 아직 잠들어 있는데 //?멀리서 온 큰 산들이 /?집 앞의 작은 산들을 깨우고 있다. //?수런수런 젖은 어깨를 털고 / 어슴푸레 고개를 내미는 // 작은 산의 봉우리들 // 재우지 못한 꿈들일랑 / 산 너머에 묻어 두고 /?다시 솟아오른 햇살들이 // 너를 기다리고 있노라고 //?서늘한 산 기운들이 / 어머니처럼 // "야, 야" 또 내 어깨를 토닥인다. - 〈졸시,「아침 經. 1」 전문〉
아침만 되면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깨운다. "화자는 그 신탁(神託)의 대상을 뫼에게 돌렸다. - '멀리서 온 큰 산이/ 집 앞의 작은 산을 깨우'는 이런 활유(活喩)는 단순한 비유의 관계를 넘어 뫼(山)에 대한 웅숭깊은 애니미즘에 뿌리를 뒀다. - 그러기에 아침은 자성(自省)을 여는 시간이자. 자성을 밝히는 시작이다. 그러니 죽비처럼 "내 어깨를 토닥"이는 산 기운이 있는 것이다. 화자는 산으로 출가하는 사문(沙門)들보다 먼저 신비주의에 쌓인 뫼를 우리들 삶의 저잣거리로 불러 내리길 원한다." 라고 시인 유종인은『시선』(2010년, 가을호- '다시 읽고 싶은 리뷰작')에서 말한다.
천천히 그는 오고 있었다. // 밤을 샌 / 개선장군처럼 // 산 너머 어둠을 이기고 /?아직 잠들어 뒤척이고 있는 // 마을 앞/ 어린 산들에게 다가와 // 내가 왔노라고 //?그래?또 새로운 하루가 / 시작되었노라고......// 파닥거리며 이 저곳에서 / 날개를 펴는 하얀 숨결들 // 멀리서 / 학(鶴)처럼 솟은 말간 아침이 // 쭉쭉 다시 얼굴을 내민다. - 〈졸시,「아침 經. 2」〉
아침에는 상쾌한 공기가 있다. 그리고 그 아침 속에는 아직 열어보지 못한 '오늘'이라는 선물이 들어 있다. 어둠을 딛고 넘어온 아침, 개선장군처럼 산 너머 어둠을 이기고 마을 앞 어린 산들에게 다가와 "내가 왔노라고, 그래?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노라"고 손을 내민다.
아침은 언제 오는가? 그리고 어떻게 찾아오는가? 아침은 어둠의 밤을 지낸 후에 찾아온다. 그리고 다시 솟아오른 오늘의 햇살과 손을 잡으면 아침이 된다. '이미 지나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 사이에 주어지는 선물, 이것이 '오늘 아침'이다. 어제의 태양을 놓쳤다면 오늘의 태양만은 확실하게 붙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아침에는 운명이란 게 없다. 오직 새날이 다가오고 있을 뿐이다.
/ 김동수(시인. 백제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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