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은 마땅히 해야 할 일…할아버지는 내 행장을 자랑하지 말라 했다."
조선어사전 편찬에 동참하는 등 우리말 살리기에 이바지한 계산 임혁규 선생(1892∼1964). 9일 한글날을 앞두고 임혁규 선생을 비롯해 정읍 산외 출신 애국지사를 모시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정읍 산외 충의선양관 건립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임혁규 선생은 조선어사전 편찬에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애국지사. 전남 무안군 삼향면 유교리에서 태어났지만 스물일곱살 때 정읍시 산외면 평사리 운전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항일 독립운동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했던 김제 출생 일송 장현식 선생(1896∼1950, 전라북도 제2대 도지사)의 권유로 '조선말 큰사전' 편찬에 드는 비용을 분담, 일제가 꾸며낸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에 잡혀가 온갖 수난과 고초를 겪었다.
손자인 임광순 전국임씨중앙회 수석상임부회장은 "우리 할아버지는 이 사건으로 의관을 벗겨 짓밟고 상투를 잘라 재기를 차는 수모를 당하셨다"며 "생전에 '내 오로지 충효를 본분으로 알고 살았거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이라 내 행장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시던 고인의 뜻을 좇아 국가에 포장을 소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집에 보전돼 있는 김양수 공의 '기금을 보내줘서 감사하다'는 편지와 1938년 3월에 '일금 백원'을 송금했다는 내용을 영수해서 동봉한 명함을 보면 알 수 있다"며 "그보다 앞선 1935년 조선어학회가 초판을 낸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 머리말에도 후원한 이들의 이름에 할아버지 이름이 나와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검거돼 옥고를 치른 이들은 사건이 처음 일어난 1942년 10월 1일에서 이름을 따 일명 '십일회(10·1)'를 구성했는데, 광복 직후에 찍은 '십일회'의 단체사진을 보면 임혁규 선생과 장현식 선생 이외에도 장수 출생 건재 정인승(1897∼1986), 익산 출생 가람 이병기(1891∼1968), 한글 띄어쓰기를 처음 주장했으며 문교부 차관을 지낸 임피 출생 김선기 선생(1907∼1992) 등이 포함돼 있다.
현재 정읍시 산외면에는 임혁규 선생 이외에도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한 민여운 선생과 독립선언문 33인 중 한 명인 박준승 선생, 동학농민혁명의 김개남 장군, 임정에 독립자금을 가져가다가 옥고를 치른 김정술 선생, 6·10만세 사건을 주도한 이동환 선생 등 산외면과 깊은 연이 있는 여섯 명의 항일지사를 함께 모신 '충의정'이 건립돼 있지만, 이를 확대한 충의선양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이치백 충의선양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은 "국난 때 나라를 지키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정읍 산외 출신 애국지사의 정신을 기리고 그분들의 정신을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충의선양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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