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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물방울 작가' 김창열 화백

'물방울 작가' 김창열(81) 화백은 생존 작가 중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영롱한 물방울이 천자문을 배경으로 맺혀 있는 그림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것은 물론, 그의 작품은 각종 아트페어나 경매에서 생존 작가 작품 중 최고가로 판매될 정도로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대 미대에서 공부한 뒤 뉴욕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이후 1969년 프랑스로 건너간 김 화백은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살롱전 '살롱 드 메'(salon de mai)에서 처음 '물방울'이 등장한 작품을 선보인 이래 근 40여년간 한결같이 물방울을 소재로 작업해왔다.

 

최근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 현대 강남점에서 근작들을 모아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있는 김 화백을 전시장에서 만나 '물방울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물방울의 의미에 대해 "시대의 상처를 내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방울을 그리게 된 사연을 한 마디로 이야기할 순 없지만…. 나는 6.25를 격심하게 겪은 세대에요. 20살 때 총 쏘는 광경을 직접 봤죠. 그러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여러 작가가 전람회를 한다고 했어요. 그때 마침 앵포르멜(비구상)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당시 내 그림의 주제는 총 맞은 육체를 연상시키는 거였어요. 총을 맞아 구멍이 뚫린 형상은 '상흔'이란 제목으로, 또 사람이 찢긴 듯한 이미지는 '제사'라는 제목으로 그렸죠. 그러다 그 상흔 자국 하나하나가 물방울이 된 것이에요. 물방울은 가장 가볍고 아무것도 아니고 무(無)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 상흔 때문에 나온 눈물이에요. 그것보다 진한 액체는 없어요."

 

물방울을 그리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어느 날 자신의 그림이 못마땅했던 작가는 캔버스 위에 물을 뿌렸고 그때 "큰 세계가 열리는 것처럼 감동"한 나머지 이후 물방울을 조형화하기 시작했다.

 

물방울 그림의 배경에는 대부분 천자문이 등장한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대부분 한자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해한다.

 

"물방울 그림의 초기인 1973년엔 캔버스와 나무판, 모래, 헝겊, 나무 잎사귀 등 여기저기 위에다 물방울을 그렸어요. 그러다 신문지 위에 그렸는데 아주 잘 그려졌어요. 그런데 신문지는 너무 일상적이라 종이에다 그리되 신문지보다 더 좋은 종이에 그리면 좋지 않을까 해봤는데 아닌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신문지라는 게 뭐냐면 글자(활자)잖아요. 그 획이 물방울의 부드러운 질감을 강조하며 돋보이게 하는 구실을 했던 거에요. 그런데 전람회 하려면 그림 크기도, 글자도 커야 하잖아요. 그래서 한자를 쓰기 시작했죠. 왜 하필 한자냐면 초등학교 가기 전 할아버지에게 붓글씨와 먹 가는 법, 붓 쥐는 법, 획 긋는 법 등을 배웠어요. 그래서 내겐 붓글씨와 천자문이 어릴 적 가장 큰 향수로 남았어요. 그래서 글씨면 당연히 한자라고 생각해요. 또 한자는 입체감이 있어요. 깊이와 넓이가 사방으로 번져나가는 듯한 흡인력이 있고 무궁무진하게 변화할 수 있어요. 한글 위에도 해보긴 했는데 밋밋했어요."

 

근 40여 년간 한 가지 작업만 해온 게 혹시 지겹지는 않았을까.

 

"남자들은 예쁜 여자 보면 다 연애하고 싶지만, 아내가 있어서 그렇게 못 하잖아요.(웃음) 화가도 이것저것 할 자유가 있는 것 같지 않아요. 파블로 피카소 때까지가 자유로웠고 우리 세대는 그렇지 못했어요. 특히 미니멀리즘 계통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작업은 못해요."

 

이틀에 한 번 1km씩 수영을 하며 건강을 관리하는 작가는 매년 개인전을 열 만큼 꾸준하게 작업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고령의 나이 탓에 예전처럼 왕성한 작업은 힘이 든다고 한다.

 

"밥 먹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작업하지만, 작업량은 줄고 있어요. 50~60대 때 비하면 작업량이 반 이상 줄었어요. 큰 작품 하기에는 힘이 들죠. 하지만, 작은 작품만 하면 답답해요. 나이가 드니 '보는 눈이 풍부해졌구나' 하는 느낌은 가끔 있어요. 예전에 그린 그림의 구성(composition)을 보면 '이런 실수는 지금이라면 안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해요."

 

이번 전시는 11월 7일까지 이어지며 가로 길이가 5m에 이르는 1천호 크기의 대작 2점과 마대가 아닌 마룻바닥 위에 그린 그림, 한자 대신 로마자를 배경으로 사용한 그림, 그림이 아닌 한지로 물방울을 조형화한 작품 등까지 2007년 이후 다양한 물방울 그림 50여점이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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