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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정종환 장관은 영혼이 있는가

이경재(본지 논설위원)

미국의 정치학자인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선진국을 선진국답게 만드는 건 '신뢰'(저서 'Trust')라고 했다. 민주주의 시장 경제체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윤리 도덕 관습 등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뿐 아니라 정부가 수행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공무원, 그들이 수행하는 정책이야말로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정책은 효과가 높다. 선진국이란 이런 신뢰가 전제되는 사회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 최장수 장관을 지내고 있는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의 토지주택공사(LH) 이전과 관련한 태도에서는 도무지 신뢰를 찾기 어렵다. 무원칙의 극치라고나 해야 할까. LH 문제는 전북과 경남이 각각 기능의 '분산배치'와 '일괄이전'을 요구하며 첨예하게 대립해 있는 현안이다. 지역의 이익과 결부된 일이라 신중히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헌데 정 장관의 발언은 그때 그때 달랐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었다. 지난해 11월11일 경남 국회의원과 만난 자리에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합본사를 한 곳으로 몰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보름 뒤 전북 국회의원 간담회에서는 "전북이 주장하는 분산배치 원칙을 지키고 가능하면 연말 안에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했다. 불과 보름 사이에 상반된 내용을 언급한 것이다.

 

또 얼마전 경제주간신문 인터뷰에서는 "정부는 원칙적으로 한 곳으로 옮기는 게 바람직한 입장인 만큼 (전북과 경남이)평행선을 계속 그린다면 직권 조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 때문에 분산배치에서 일괄이전으로 정부방침이 바뀌었다는 추측을 낳았다.

 

이에 발끈해 열린 열흘전 전북 국회의원 간담회에서는 "만약 합의가 안되면 최악의 경우 분산배치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이번에는 경남 쪽이 의아해 했다. 진주 출신의 한나라당 최구식의원은 확인 결과 "정 장관이 분산배치는 정부의 원칙이 아니라고 하자 전북 의원들이 강하게 몰아세워 나온 말"이라고 논평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놓고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다. 소신 없이 오락가락하고 그때 그때 말을 바꾸는 공무원을 지칭하는 말이다. 정 장관의 태도는 꼭 막스 베버 식의 '영혼 없는 공무원'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장관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사무를 주관하고 집행하는 중앙 행정관청의 우두머리다. 단순한 공무원이 아니다. 정치적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도 발언이 오락가락하고 그때 그때 다르니 어떻게 그를 신뢰하고 따를 수 있겠는가.

 

LH는 지난해 10월1일 통합됐으니 이전문제는 꼭 1년을 허송세월했다. 오히려 혼란만 부추기고 자치단체간 갈등만 증폭시켰다. 오락가락하면서 임기응변으로 대응해 온 탓이다. 그리고 그런 무책임, 무원칙의 주인공은 정종환 장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위직 공무원도 아닌, 일국의 장관이 영혼 없는 말을 해도 괜찮은 것인지 막스 베버에게 물어야 할 일이다.

 

장관이 영혼 없는 처신을 한다면 정책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고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만다. 후쿠야마의 지적처럼 국민이 신뢰할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는 장관이 수행하는 정책이라면 믿고 따를 국민이 없을 것이다. 장관이라면 영혼이 담긴, 혼신의 정성을 다한 말을 해야 한다. 그럴 때 존경받고 정책도 신뢰할 수 있다.

 

/ 이경재(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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