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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리얼 다큐

강지이(독립영화 감독)

현실은 늘 영화를 압도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 칠레 코피아포 산호세 광산 붕괴 사고 이후 69일 만에 33명의 광부가 살아 돌아오자 지구촌은 이 각본없는 드라마에 열광했다. 이 드라마는 이미 거액의 인터뷰와 CF 제안을 받는 콘텐츠가 되었다. 광부들이 구조되기도 전에 칠레의 한 작가는 '생매장됐던 33명의 남자들'이란 책의 판권을 팔았다. 구조된 광부의 아들은 광부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는 실화라서 영화보다 진정성의 감동이 크다. 현재 상영중인 다큐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 정부와 국민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음악 실험을 다룬 리얼 스토리다.

 

베네수엘라는 남미 최대의 산유국이지만 극심한 빈부 격차로 인해 빈민가 아이들은 총격 사건과 마약 거래, 폭력의 악순환에 노출되어 있다.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1975년에 전과 5범을 포함한 11명의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음악으로 아이들을 구해내고 싶었던 이들은 빈민가의 차고나 창고를 전전하며 연습하던 엘 시스테마를 현재 전국 각지에 221개의 음악 학교와 500개 가량의 오케스트라를 보유한 센터로 키워냈다.

 

엘 시스테마는 원래 음악을 위한 사회 행동으로 불린 음악교육 재단을 뜻한다. 지금은 30만 명의 빈민층 어린이, 청소년들이 음악을 배우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요새가 되었다. 엘 시스테마를 통해 세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음악가들이 배출되면서 베네수엘라는 음악 강국으로 부상했다. 예술교육으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이상의 실현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국가 이미지는 격상됐다.

 

정부는 해마다 2900만 달러(약 310억 원) 에 이르는 예산을 엘 시스테마 운영비로 지출하고 있다. 엘 시스테마는 운영비의 90%를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지원받으며 35년 동안 꾸준히 음악교육에 힘쓸 수 있었고, 그 결과 베네수엘라는 예술교육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칠레의 광부 구출 작전에 투입된 구조 비용은 대략 1000만~2000만달러 (약 110억~220억원) 라고 밝혀졌다. 이 드라마를 통해 전세계는 칠레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과 국민의 단결력, 광부들의 불굴의 의지에 감동했고, 칠레의 저력을 확인했다.

 

두 실화는 국민과 더불어 과감한 공적 지원을 결정한 정부 관료가 함께 쓴 이야기이다. 칠레 관료들에게는 국민 33인이 몇 백억의 가치보다 소중했다. 그 점에 지구촌은 감동했다. '연주하라 그리고 싸워라'를 모토로 베네수엘라 예술가들이 거리로 나섰을 때, 관료들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관료들이 돈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았다면 얻을 수 없는 감동 스토리다. 국민의 미래를 디자인한다는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해서 국민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줄 아는 관료가 그 나라엔 있다. 인체 유해성 논란이 거센 시위 진압 장비인 음향대포를 2억 3천만원짜리 스피커로 둔갑시켜 구매를 요청한 관료가 사는 나라 국민으로서 부러울 따름이다.

 

국민의 소리를 소음으로 치부하며 밀어붙이기식 정책을 일삼는 관료들이 주인공이 되는 나라에서 국민은 엑스트라보다 못한 존재다. 잔혹한 리얼 다큐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

 

/ 강지이(독립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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