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태조 어진을 봉안한 지 600년이 되는 해이다. 600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릴 예정이다. 우여 곡절 끝에 어진박물관이 개관하고, 보존처리를 끝내고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ㆍ전시 중인 태조 어진의 진본이 어진박물관에 봉안(奉安)될 것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서 왕가의 산책, 망궐례, 백일장, 사생대외, 궁중복식 및 탁본 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경기전 일원에서 함께 열리게 된다.
태조 어진 전주 봉안 600주년 기념 사업 소위원회에서 마련한 이번 행사는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는 많이 축소되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지역 특히 중앙 정부의 관심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태조 어진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ㆍ현재적 의미에 대한 동의와 견해 차이 때문이지만, 어진을 600년 넘게 지켜온 전주로서는 서운한 일이다. 어떻든지 이제 태조 어진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될 것이다.
600년을 기념하는 사업에 가장 중요한 행사는 봉안행렬이라 할 것이다. 태조 어진이 경기전을 떠나 옮겨지거나 새로 봉안 된 것은 총 10차례이다. 최근 김철배의 연구에 의하면 태조 어진은 1410년 처음 봉안 된 뒤 1442년, 1614년, 1636년, 1688년, 1767년, 1894년, 2008년 새로운 어진의 제작과 전란(임진왜란, 병자호란, 동학혁명), 화재, 보존처리 등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환안되었다. 태조 어진이 전주에 봉안된 것은 1410년과 1443년, 1872년 등 세 차례이다. 현존하는 어진은 바로 1872년에 새로 제작되어 봉안한 것이다.
이러한 봉안ㆍ환안의 역사는 전주의 훌륭한 문화콘텐츠임은 분명하다. 이번 봉안 행렬 역시 "고증을 바탕으로 한 거리축제"로 열릴 것이다. 그렇지만 봉안행렬 자체는 고증을 바탕으로 하였으나 새로운 형태의 봉안행렬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어진의 봉안 행차 시 의장의 수는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가장 많았을 때가 약 33개 였으며, 세종대는 11개의 의장이 사용되었다. 배종대신의 경우 대신 1명, 종신 1명, 승지 1명, 예조당상 1명, 경기전관 1명 등이 배종하였으며, 담배군 24명, 의장군 33명, 속오군 4초 등 총 70여 명 정도였다. 따라서 1백여 명이 넘는 이번 봉안 행렬을 역사적인 고증된 봉안행렬로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감사의 망궐례 역시 봉안 행렬과는 무관한 행사이다. 망궐례는 본디 지방관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에 객사의 궐패를 향해 배례하는 것으로 태조 어진의 봉안과는 연관성이 없다. 태조어진을 봉안한 배종대신들이 객사에 들러 무사 봉안을 임금에게 고하는 배례를 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역사적인 고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한 행사는 늘 토론의 대상이 된다. 역사적 '재현'인지 아닌지, 고증을 바탕으로 하였다지만 어디까지고 고증이고 어디부터가 확대된 것인지, 행사를 보는 사람들 마다의 생각만큼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논의들이 나온다. 태조어진 봉안 600년의 봉안 행렬은 2010년 현재 기념사업을 고민했던 사람들이 새롭게 만들어낸 '이벤트'로 앞장서 깍아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시민들이 오해를 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들은 이들에 대한 자세한 역사적 고증에 목말라 있다.
/ 홍성덕(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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