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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함께 떠나는 주말여행] 경남 남해

남쪽 끝에서 '내일' 을 보았다…내 지친 마음은 두고 왔다

경남 남해 창선-삼천포대교의 야경. ([email protected])

경제지에서'여행전문기자'인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배는 남해를 추천했다. "거기 안 가봤어, 별로야"라고 딴소리 해 비밀로 붙이고 싶을 만큼 좋았다고 했다.

 

(위부터)가천 다랭이마을의 산비탈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 금산 보리암의 여명, 죽방렴 일출 ([email protected])

 

경남 남해는 산이 바다를 품어 만든 항구 같다. 조용히 스며들어 옴팡 안겼다가 또 조용히 돌아나오는, 한번에 다 보려는 욕심을 갖게 만들었다가 다 보았다고 말하는 오만은 버리게 만드는 곳이다. 혼자 정밀한 풍경을 새기고 싶었으나, '방향치'인 관계로 동행자가 붙었다. 운전대도 맡겼다. 수평의 바다가 잔잔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오래토록 지켜봤다.

 

지난 16일. 거대한 주황색 현수교(懸垂橋)인 남해대교가 일행을 맞는다. 다리만 건너면 남해다. 남해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를 따라 남해읍으로 '쭉' 들어가면 고현면 차면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 이락사(李落祠)가 나타난다. 노량해전을 벌이다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맨 처음 안치됐던 곳이다.

 

가천 다랭이마을에 닿으면 산비탈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과 수평의 바다가 시간의 무량함을 느끼게 된다. 108층이나 논들을 경작하면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108'이란 숫자에서 '백팔번뇌(百八煩惱)'를 떠올렸다. 몸을 세우면 금세 고꾸라질 것 같은 이곳을 걷고 또 걸었다. 남은 이들은 땀에 절은 어깨를 서로 맞대고, 또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야 한다.'선조들로부터 빌려 쓰는 땅'이란 말이 떠올랐다. 들을수록 묵직해졌다.

 

금산은 빼어난 산이었다. 금산의 보리암은 향일암, 낙산사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는 데 그만인 3대 절집으로 꼽힌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 절은 '기도발'이 영험하다고 알려져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에도 소원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삼층석탑과 해수관음상을 확인했을 뿐 금산을 병풍 치듯 둘러싸고 있는 기암들의 절경은 확인할 수 없었다. 흐린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상주은모래비치는 은가루를 뿌린듯 부드러운 해변이다. 2km에 이르는 반월형의 백사장에 100년 이상된 해송들이 둘러싸고 있다. 내 마음 속 파도치는 바다와 망망한 바다가 만나 하나로 합일될 때까지 바다를 보고 또 바라본다. 새로운 여정과 귀환의 갈림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독일인마을과 해오름예술촌, 원예예술촌, 바람흔적미술관에서는 인생과 자연과 예술이 겹쳐진다. 독일인마을은 1960년대 광산 노동자와 간호사로 독일에 파견 돼 외화벌이에 나섰던 교포들이 돌아와 조성한 곳이다.붉은 고딕의 독일식 지붕들로 한적한 유럽의 전원도시를 보는 것 같다.

 

해오름예술촌은 2003년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개조해 놓은 곳으로 추억과 예술이 공존한다. 정금호 촌장이 수집한 골동품 2만여 점이 전시, 보물창고를 연상케 했다. 미키마우스가 누워 있는 돌의자, 코만 반질반질하게 된 돼지 돌조각상 등을 둘러보고 있으면,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물건방조어부림(천연기념물 제150호)은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지운다.지난 300년간 거친 파도와 바람에 맞서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 바다숲이다. 방조림에서는 해가 서서히 저문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저물지 않는다. 봄·가을이면 바다 낚시를 즐기려는 강태공들로 북적인다. 창선교 부근 지족해협 죽방렴은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다. 대나무 말뚝을 V자로 박아놓으면 빠른 물살 때문에 방향을 잃은 물고기가 이 사이로 들어가 나오지 못한다. 여기서 잡은 멸치는 신선도가 높아 최고의 값으로 쳐준다. 갓 잡아 올린 멸치로 멸치쌈밥, 멸치회무침 등을 내놓는 밥집들이 즐비하다. 살캉살캉 몇 번 씹으면 부드럽게 녹아드는 맛을 잊을 수 없다.

 

모든 여행은 돌아오지 않으려고 떠나는 것이다. 닳고 닳은 자아는 여행지에 버리고 부쩍 커버린 자아를 안고 돌아오는 것이 여행이다. 내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 나의 고민을 내 몸으로 그려낸다. 답답함을 넘어, 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여행을 통해 나 자신을 밀고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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