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자신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던 지인으로부터 최근 푸념을 들었다. 그분 얼굴에 언뜻 언뜻 드리워지던 그늘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집안일을 도맡아하시며 자상하게 가족들을 돌봐주시던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요즘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하신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못알아보고 듣기 민망한 욕설을 하는가 하면 며칠 전에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잠깐 한눈파는 사이 이웃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 매우 난감했었다고 한다.
소설가 이청준의 자전적 이야기로 1996년 임권택의 영화와 함께 동시 출간된 소설 '축제'는 이런 치매노인의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 여기서 외지 생활을 하고 있는 주인공 어머니를 시골에서 홀로된 형수가 모시고 사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치매에 걸려 종종 몰래 집을 나가곤 해서 가족들을 난처하게 만들곤 한다. 형수는 너무 성가신 나머지 방에 자물쇠를 걸어 잠가 친척들 사이에 좋은 평판을 듣지 못한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몇 십년 전으로 치매 노인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때다. 치매에 걸리기 전 다른 질환으로 별세하는 노인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주인공의 형수를 손가락질 했던 주변 친척들은 치매 노인을 부양해 본 경험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몇 십년이 지난 요즘 치매노인 수가 매우 빠른 숫자로 증가하고 있어 주변에서 고민하는 이들을 자주 본다. 노인을 위한 요양병원의 숫자가 급속히 느는 주된 이유일 것이다.
핵가족화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노망이 났다고 해도 친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 인간의 도리냐는 꾸짖음은 이제 시대에 아주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공자님 말씀이 되어버렸다.
고령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현재의 고비용 구조 의료 시스템으로는 나날이 늘어나는 만성 질환에 시달리는 노인환자를 돌보는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 아래 정부 차원에서 IT와 로봇기술 이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치매 노인을 위해서 첨단 과학기술도 별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게 문제다. 치매노인에게 위치 추적 장치를 달아주거나 외출하는 경우 주위를 살피고 노인을 부축해 지팡이나 보조자 역할을 대신하는 로봇 개발 정도가 고작이다. 치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근본적 치료법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인데 현시점에서 이는 아주 요원해 보인다.
요즘 심해지고 있는 건망증에 혹시 이러다 치매에 걸리는 게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필자가 정년을 맞이할 즈음이 되면, 기대 수명이 100살에 육박할 텐데 혹시 치매라도 걸려 오래오래 살면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면 어쩌나 하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때쯤 되면 국가에서 치매노인을 완벽하게 돌봐 줄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려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려면 돈은 얼마나 벌어놔야하지?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저런 부질없는 생각에 심란해하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결심해본다. 절대로 치매엔 걸리지 말아야겠다고.
요즘 4~5 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는 즐거이 걸어다니고, 카레를 자주 먹으며,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바둑을 두게 된 이유다. 치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아직 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없기에….
/ 맹성렬(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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