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군 덕치면 장산마을 앞 강 징검다리를 건너면 바로 산이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길이 세 갈레로 갈라졌다. 왼쪽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강을 따라 물우리로 가는 길이 있고 용수형님네 산을 지나 산비탈을 타고 오르면 바로 북두네 밭이 나오고 종현이네 밭이 나왔다. 복두네 밭가를 지나면 재남이 형네 밭과 찬수네 밭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강을 건너자마자 바로 산을 타고 오르는 길이 있는데, 첫 번째 밭이 우리 밭이고 왼쪽이 재경이 형네 밭이다. 코가 땅에 닿을 것 같은 길을 따라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가면 정용이네 밭이다. 그 길을 따라 비스듬이 걸으면 쌍둥이네 알밤나무 밭이고 휙 돌아가면 현철네 산소가 나오고 나무를 다니는 평 밭 위의 산이다.
재경이 형네 밭 위는 정수네 밭이고, 그 위는 한수형님네 산과 밭이 있다. 고개를 넘으면 아롱이 아저씨네 밭이고 나머지는 다 산이다. 산에 가면 사람들이 산소에 가고 나무하러 다니는 길들이 있다. 그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토기나 노루가 다니는 길이 있고, 앞산 머리 하늘에는 새들이 날고 해와 달과 별이 다니는 길이 있다.
다른 한 갈레길인 강물을 따라 오른 쪽으로 가면 종길이 아제네 밤나무 밭이 있고 큰 집 대숲이 있고 그 위에는 윤환이네 밭이 있었다. 윤환이네 밭가에는 접시만한 감이 열리는 접시감나무가 있었다. 대숲 아래는 다슬기 방죽이 있었고, 다슬기 방죽이 끝나는 곳, 산 위로 정수네 밭 정용이네 밭과 논, 오금이네 밭, 현철 네 밭, 종만이 아저씨네 밭, 종길이 아제네 밭, 두만이 형님네 밭이 있었다. 논과 밭이 묵으니 이 많은 길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 길도 자연이어서 자연으로 가버린 것이다.
징검다리를 건너 논과 밭과 산으로 난 이 모든 길들은 사람들의 경제적인 활동에 의해 사람들의 발길로 만들어진 길이다. 그런데 웬 일인가. 많은 자치단체들이 많은 돈을 들여 사람들이 전혀 다니지 않은 묵은 길을 복원하여 생짜로 길들을 만들고 있다. 이른바 마실 길, 둘레길, 올레 길, 길 내기 광풍이 불고 있다. 길이 만들어지고 묵는 순리를 거스르지 말일이다.
/ 김용택(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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