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이 (독립영화 감독)
지난 달 원고를 마감한 이후, 현재까지 3개의 영화제에서 감독으로 관객을 만났다. 영화의 첫걸음인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머릿속에 항상 염두에 두었던 관객을 영화관에서 직접 만나는 시간은 기분 좋은 설렘과 긴장이 있다. 어떤 감독님들은 영화로 이야기를 다 했는데 무슨 관객과의 대화가 필요하냐는 식의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감독들에게는 아마 가장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10월 21일에 개막한 제8회 서울기독교영화제(SCFF)는 서울극장에서 열렸다. 몇 명의 관객을 만날 지 알 수 없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날에 맞춰 이동했다. 평소에는 잘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영화제는 영화인들에게 즐거운 축제인 동시에 살아있는 공부방이다.
이후 두 영화제는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관객을 맞았다. 제10회 전북독립영화제에서는 2개의 단편 영화가 상영되어서 영화제 기간 5일 동안 관객과의 대화를 4번 가졌다. 뒷풀이 자리에서는 잘 모르고 지내던 지역 감독들과 인사도 나누고, 상영관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여러 질문들을 주고받는다. 격의 없고 솔직한 영화평들이 술과 함께 오가는 뒷풀이 자리는 방과후 공부방이다.
전주시민미디어센터의 제5회 만만한 영상제에는 감독 겸 스태프로 참여했다. 장애인, 전직 격투기 선수, 고등학생, 직장인, 주부, 이주여성 감독이 만든 영상물이 상영됐고, 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진행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질문을 하지 않아도 진행자가 감독에게 질문을 이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관객들에게도 어쩌면 그 시간은 영화에 대한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부 시간이다.
영화인들에게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은 학교다. 우리 지역에서는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이라는 학교를 통해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볼 수 없는 보다 다양하고 새로운 독립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지역 시네마테크인 지프떼끄(Jiff Theque)는 상영뿐만이 아니라 각종 영화 관련 세미나, 토론회, 유익한 교육 프로그램이 열리는 좋은 학교이다.
서울에는 서울아트시네마라는 훌륭한 시네마테크전용관이 있다. 이 학교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내로라하는 감독들과 배우들이 맥주 광고에서 뭉쳤다. 맥스 맥주 광고를 보면 출연료 전액을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기금으로 기부한다는 내용의 자막이 나온다. 영화인들의 공부방과 학교를 자립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이 프로젝트 광고를 볼 때마다 씁쓸하기 그지없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외면당하는 저예산 영화, 예술 영화, 고전 영화를 상영해 주는 시네마테크는 영화인들에게 꼭 필요한 학교이다. 우리나라에는 보다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는 학교와 공부방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 곳에서 영화인들이 세상을 다르게 보고 읽을 수 있는 공부가 계속되어야 한다. 좋은 영화를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생(生) 공부를 위해서 영화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지금 맥주잔을 부딪치며 투쟁중이다.
/ 강지이 (독립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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