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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와 혁명은 영혼의 쌍둥이"

"시인이 혁명가가 될 수 없다면 시대의 모순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고통받거나 세속적 야만에 맞서 싸우지 못할망정 깊은 상처를 입을 것이다."(26쪽)

 

고은 시인의 산문집 '나는 격류였다'(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가 발간됐다. 시인이 서울대 초빙교수로 맡은 강좌를 비롯한 국내외 강연 내용과 기고문, 일본 석학 와다 하루키와의 대담 등을 묶어 새롭게 정리한 책이다.

 

출간에 맞춰 23일 열린 간담회에서 시인은 "최근 언어의 신체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며 "으르렁거릴 때 곧추서 있는 고양이 꼬리의 떨림, 주인이 돌아올 때 개 꼬리의 하염없는 기쁨, 하루 내 지치지 않고 온몸을 뒤흔들면서 우는 매미의 울음소리처럼 우리 언어도 온몸을 다해서 세상에 바쳐지는 소리가 되어야 한다고 고민하는데, 이런 충정이 이번 책에 반영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인이 '만인보' 완간 이후 처음 출간하는 이번 산문집에는 등단 50년을 넘긴 저자가 생각하는 시와 시인의 삶, 역사와 통일에 대한 시각 등이 담겼다.

 

자서(自序) 형식의 첫 글 '혁명 그리고 시'에서 그는 "저항은 정신의 변화와 함께 언어의 변화를 수반한다"며 "문학과 역사는 동의어이고 시와 혁명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상호성장적인 영혼의 쌍둥이"라고 말했다.

 

"혁명가와 시인을 하나의 가계로 파악하는 것과 상관없이 시인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반항의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인이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 늘 웃고 있다면 그는 이미 시인이 아니다. 시는 눈물의 산물이다."(26쪽)

 

실제로 그는 식민지시대, 전쟁과 분단, 민주화운동까지 민족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왔으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민족의 다양한 얼굴을 그린 연작시 '만인보' 등에서 역사와 현실을 작품에 반영해왔다.

 

그는 "'만인보'는 세상에 대한 직무유기 같은 것"이라며 "문학이 세계의 지극히 일부만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게 슬프기도 하고, 그것이 한계니까 어쩔 수 없기도 하다"고 말했다.

 

"20여 년으로 일생을 담보하는 자서전이라는 것도 못마땅해요. 우리의 일생이나 100년이 아닌, 1천년, 2천년으로 품이 크게 역사를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연보에 전생에 대해 적은 것도 이 세상만으로는 이승의 관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아서예요."

 

50여 년의 문학 인생을 걸어오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대한민국의 대표 시인이 됐지만, 여전히 그는 "세상에서 시인은 가장 낮은 것이며, 시인은 교사가 아니라 누가 다치면 위로해주는 친구"라고 했다.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낮지만, 시인이 내 몸 안에 들어왔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이름입니다. 이를 지키면서 지난 50년 살아오고 있어요. 그동안 시를 미워하고 때려죽여 버리고 싶은 때도 있었고, 어디 가서 장사하고 싶은 때도 있었고, 내시를 태운 적도 있어요. 결국 그런 것들이 시를 사랑하는 파편으로 남아있어요. 이제는 결코 시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최근 한 기자회견에서 "조국이 통일만 되면 내 나라를 떠나 민족을 잊고 싶다"고 발언해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그는 "통일이 되면 민족이 하나가 되는 차원이 아니라 한반도가 완전히 새로운 문명을 맞이할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분단 체제의 연장선상이 아닌 전혀 새로운 문명의 마그마가 여기서 터져 다중적인 복합체제가 될 것이며, 비장한 이민 선언이 아니라면 굳이 내가 한반도에 속해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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