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저렴하면서도 좋은 화질로 찍을 수 있는 상품들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영화 촬영 방식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동영상 기능이 대폭 확대된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 DSLR 카메라, 렌즈를 교환할 수 있는 캠코더가 변화를 이끄는 주역이다.
이들은 수억 원대에 호가하는 35㎜카메라나 수천만 원대의 HD카메라를 대신할 새 장비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화는 'DSLR'에 구애중 = 전계수 감독은 올해 DSLR 카메라로 찍은 영화 '뭘 또 그렇게까지'를 선보였다.
아리랑TV를 통해 전 세계로 방송되는 프로젝트 '영화, 한국을 만나다' 가운데 두 번째 작품으로, 올해 극장에서도 개봉된 영화다.
DSLR의 강점은 무엇보다 저렴하다는 데 있다. 렌즈 값을 포함해도 1천500만원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 감독은 '캐논 마크2'를 사용했다. 하루 대여료는 렌즈를 포함해 20만원 수준이었다.
일반적인 35㎜ 카메라는 200만원대 안팎, 성능 좋은 HD 카메라의 대여료도 100만원을 넘는 것에 비하면 크게 저렴하다.
전 감독은 "가격이 싸면 화질이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화질이 좋아서 깜짝 놀랐다"며 "큰 화면에서 봐도 가격과 대비해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고 했다.
'은하해방전설'의 윤성호 감독은 DSLR을 이용해 영화 '도약선생'을 촬영했다. '도약선생'은 장대높이뛰기 유망주인 여주인공이 가수와 운동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은 장대높이뛰기를 선택한다는 내용을 다룬 영화.
달리고 뛰는 모습을 다양한 앵글로 포착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화면이 나올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은다. 이 영화는 '서울독립영화제 2010'의 개막작으로 선정돼 다음 달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이밖에 '도망자 플랜B'(KBS), '닥터챔프'(SBS) 등 드라마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최후의 툰드라'(SBS), 올해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장편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성규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도 DSLR을 이용해 찍은 경우다.
◆휴대전화ㆍ캠코더로도 영화찍는다 = DSLR보다 더 작은 휴대전화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 등 현역 12명의 감독들이 아이폰 4G를 이용해 촬영한 영화들이 지난달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이 영화들은 짧게는 3분에서 길게는 8분에 이른다. 일반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하기에는 부족할지 몰라도 소극장 화면에서는 충분히 감상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다만, 소리를 녹음하기 어려운 휴대전화의 특성 때문에 12편 중 3편을 제외하면 나머지 영화들은 대사가 거의 없고 이미지가 중심이다. 아울러 아이폰을 들고 촬영하다 보면 화면이 흔들릴 수밖에 없어서 감독들은 고정된 화면으로 영화 대부분을 채웠다.
인상적인 데뷔작 '똥파리'로 각종 국제영화제를 휩쓴 양익준 감독은 최근 소니에서 출시된 핸디캠 'NEW-VG10'을 이용해서 단편영화를 찍었으며 현재 후반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소형카메라 가운데에서는 렌즈를 교환할 수 있는 최초의 핸디캠이다.
"렌즈교환이 가능한 DSLR의 장점과 영상촬영에 최적화된 캠코더의 장점을 섞어 놓은 캠코더계의 하이브리드 제품"이라는 게 소니 측의 설명이다.
이처럼 다양한 카메라들이 개발되고 실제로도 활용되는 것에 대해 영화관계자들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제이플러스의 오주은 PD는 1일 "영화계에서 새로운 매체에 대한 호기심은 있는 것 같다"며 "특히 카메라의 몸집이 작으니 역동적인 화면, 필름카메라로 찍을 수 없는 앵글이 나온다는 점에서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고 현장분위기를 전했다.
◆신매체..필름카메라 대체할까 = 저렴하고, 기동성이 좋다는 점은 새로운 카메라들의 장점이다.
실제로 필름카메라로 한 테이크를 촬영할 경우 3-5명 정도가 따라붙어야 하는데, DSLR이나 아이폰으로 찍는 경우는 1-2명으로도 커버할 수 있다.
여기에 사람 몇 명만 들어갈 수 있는 협소한 공간에서 촬영할 때, 이전에 불가능했던 쇼트들을 찍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휴대전화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주목을 받지 않고도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다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장점만큼이나 한계점도 분명히 있다. 큰 스크린으로 확대할 경우 입자들이 여전히 고르지 못하다는 점은 숙제다.
오주은 PD는 "DSLR은 스튜디오의 느낌을 살릴 수 있고 독특한 색감이나 질감이 있어서 일부 감독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커다란 스크린으로 확대됐을 때 입자가 어떻게 나올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영화계에서는 팽배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DSLR의 장점 중 하나인 심도도 필름카메라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다.
'뭘 또 그렇게까지'의 김영민 촬영감독은 "필름카메라와 비교한다면 심도 자체가 다르다. 질감에서도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한마디로 룩(Look) 자체가 다르다. 엄청난 가격차이에서 오는 차이는 아마 어쩔 수 없을 것"이라며 "단편이나 저예산은 모르겠지만 DSLR 등을 이용해 수십억원이 들어가는 상업영화를 찍는 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빠른 커트나 이동 커트 등 영화 중간마다 잠깐 효과를 볼 수 있는 촬영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며 "DSLR 등은 필름카메라나 디지털카메라를 대체하기보다는 보조적인 선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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