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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거리에서] 섣달 그믐

설이 다가오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 사랑방에 모여 풍물 굿 악기들을 손봤다. 깨진 꽹과리나 징은 버리고 새로 샀다. 장구는 통만 사오고 궁굴 채에는 노루가죽을 커다란 오줌통에 오랫동안 담가두었다가 꺼내 짱짱하게 늘려 햇볕에 말려서 만들었다. 열채 쪽은 개 가죽을 또 그렇게 준비했다. 장구를 다 만들어 치면 당글당글 경쾌하고 당당한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마을 사랑방에서 울려 처지던 농악소리는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만 낼 수 있는 소리였다. 소고는 소고를 칠 사람들이 각자 만들었다. 소고는 다 쓴 체통과 토끼가죽으로 만들었다. 굿 띠를 새로 만들고, 하얀 창호지를 물들여 울긋불긋 고깔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지난 한 해 동안 일하느라 잠깐 잊었던 발짓과 손짓과 몸속에 숨을 가락들을 되살려 내어 굿가락들을 맞추어보았다.

 

섣달그믐 안에 모든 집안일을 다 끝내야 했다. 소죽을 끓여 줄 소죽 감도 다 썰어 놓아야 하고, 헛청에 장작도 가득 패 놓아야 한다. '섣달 그믐날 나무 하는 놈은 내 아들 놈이란 욕이 있다.' 그만큼 섣달그믐 안에 모든 집안 일이 정리 정돈 되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새날을 맞이하기 위한 농민들의 정성이 가득 한 날이 섣달그믐이었다.

 

집집이 굴뚝마다 연기가 솟아 오르고 이 집 저 집에서 떡 빵아 찧는 소리가 요란했다. 쑥 떡, 콩떡, 인절미, 시루 떡, 콩 과자, 조청 등 설빔들이 집안에 가득 찼다. 설날 아침 차례 상 차린 준비가 다 되면 사람들은 이제 몸을 씻었다.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데워 온 식구가 다 몸을 깨끗이 씻었다. 새 날 새아침을 맞이하기 위한 사람들의 정성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고 정리가 되었다.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1년 중 가장 어두운 밤을 맞이하게 된다. 가장 어두운 밤이 가져올 가장 밝은 새 날 아침을 기다리는 것이다.

 

세월이 가면서 설도 변했다. 올 겨울 한파로 시골 집 상수도가 동파된 집이 많다. 물을 많이 써야 할 텐데 걱정이다. 이놈의 날씨는 왜 이리도 오랫동안 추운지, '구제역이다' '기름 값 상승이다' 지금 농민들의 마음은 마음이 아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런 고향을 찾는다. 살면서 지치고 다친 마음을 편히 뉘여 쉴 곳이 그 곳이기 때문이다. 내일이 섣달 그믐이다. 어수선한 마음과 집안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날이다.

 

/ 김용택(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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