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가치관이 존재한다. '빼앗기며 산다'는 생각과 '덕을 보며 산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전자는 사회적 갈등을 빚어내고, 후자는 공생환경을 만들어 낸다. 이런 집단사고(group think)는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그 외침이 군중의 깃발로 분출되는 게 다반사다. 문제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광경들이 반복적으로 목격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이전문제와 전주 시내버스 파업, 부안 방폐장 사태, 새만금사업 추진과정에서 등장한 깃발들이 내가 섞여있는 '전북인'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무리 갈등과 분열이 민주주의의 꽃이고 비용이라지만, 이 지역에 남겨진 피해의식과 반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들 갈등의 현장은 저마다 격랑을 이뤘다. 이 복잡다단한 퍼즐을 쉽게 풀 묘수는 없다. 그러나 삐딱하게 바라보는 쪽은 전북인의 기질과 관련지어 그 원인으로 내놓기 일쑤다. '부정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시각과 '눈치를 잘 본다'는 전래의 심성에서 이런 현상들이 나온다는 얘기다. 예컨대 깃발에는 지역사에 흐르는 어떤 정신적 패러다임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절대적인 잣대일 수는 없지만 그 편향적 시각을 과거에서 읽어내는 데 주목하고 싶다. 차제에 전북인에 대한 담론의 함정을 막을 수도 있다고 본다.
우선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의 관점이다. 도내 향토문화계는 이런 주장을 무엇보다 인식의 모순으로 갈파한다(전북학연구1. 1997). 공주강 이남지역에 대한 경계를 자손에 훈계한 이 기록은 당시 후백제의 세력이 강성했다는 반증이라고 한다. 후백제 잔존세력들의 반항을 미리 막아보려는 조처가 왜곡됐다는 것이다. 조선조 이중환의 '택리지' 내용도 마찬가지다. '인심이 교활하고 옳지 않은 일에 쉽게 부화뇌동(附和雷同) 한다'는 혹평은 논리성과 합리성이 배제된 문제작이라는 평가다.
역사는 기억해야 할 것이 있고 잊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전북이 처한 역경은 외부와 내부의 두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그간 우리의 시각은 정부에 대한 원망이 더 우세했다. 역대 정부의 차별정책으로 이 고장 낙후의 최대 원인이 됐고, 그것은 지역을 패배주의로 찌그러지고 지치게 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원인은 내부에도 있다. 자신의 잘못은 덮어두고 다른 탓만을 하는 마음이 올바를 수는 없다. 역대 정권에서 총리, 국회의장, 감사원장, 국가정보원장, 대통령 비서실장 등 실세들을 배출했지만, 제대로 소신을 펴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떴지 않았는가. 주어진 여건에서 할 일이 무엇이었으며, 무엇을 소홀히 했나를 돌아보는 마음들이 많아질 때 지역도 건강해진다. 전북이 발전하고 성숙하려면 스스로 깨어 있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마냥 '빼앗기며 산다'는 가치관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 정당한 몫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 지역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일은 없는가도 생각해 볼 일이다. 깃발 하나를 받들어도 전북의 소중한 자존심과 정체성을 생각하는 고민이 담겨 있길 바란다. 무한경쟁시대에서 이미지는 경쟁력 제고뿐 아니라 기업유치, 청년취업 등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마케팅의 주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는 이유에서다.
/ 최동성 (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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