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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슬로시티와 한옥마을

김성주 (전라북도의회 환경복지위원장)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 조금만 여유 부렸다간 봉변을 당하는 세태를 빗댄 말이다. 좀만 늦게 출발해도 뒤에서 빵빵거리는 도시에서 여유가 허용될 수 있을까.

 

그런데 전주가 슬로시티에 선정됐단다. 그것도 인구 8만 이하 작은 도시에만 부여하던 것을 전주가 처음으로 받았단다. 나는 선정소식을 듣고 조금 의아해 했다. 철저히 도시화되어 있고 이동할 때는 자가용이 제일 빠르고 편한 수단이고 사람들이 편하게 걸을만한 보행로도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 않은 전주가 슬로시티라니!

 

유유자적 여유부리며 기웃기웃 천천히 걸어 다녀본 적이 있는가. 운동도 전쟁터의 병사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하고 안면에는 큰 마스크 가려 알아볼 수 없게 무장한 사람들로 넘쳐나는 도시에서 느림이라….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근데 어쨌든 슬로시티로 선정되었다니 앞으로 느리게 여유있게 살아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그리 못살았지만 앞으로 한번 그렇게 살아보자는 말이다. 슬로시티의 시민이라고 하지 않는가.

 

도대체 슬로시티가 무얼까. 전주 한옥마을은 왜 선정되었을까. 슬로시티가 되면 뭐가 달라질까. 슬로시티는 이탈리아에서 패스트푸드의 대명사 맥도널드 햄버거가 로마에 진출하려 하자 전통음식을 지키자는 취지로 슬로푸드 운동을 전개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음식뿐 아니라 도시민 전체의 삶으로 확대하자는 취지에서 이탈리아 조그만 마을 그레베의 파울로시장의 제안으로 시작한 것이다.

 

슬로시티의 상징물은 마을을 이고 가는 달팽이다. 느리게 먹기와 느리게 살기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빨리 만든 음식이 아닌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맛, 후다닥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음미하며 먹는 음식. 그냥 흘러보내는 게 아니라 음미하고 되씹어서 인생과 삶의 의미를 깊게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생활을 말한다. 걷기 열풍도 느림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경제적 풍요와 물질적 만족만을 쫓는 게 아니라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것이 느림의 철학이다.

 

전주 한옥마을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유는 전통과 문화의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도시 중심에 한옥마을이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란다. '좋은 음식과 건강한 환경, 지속가능한 개발, 공동체의 전통 위에서 삶의 질을 추구하는 도시'가 슬로시티의 목표다.

 

스웨덴 펄쇼핑은 '생태적으로 건전한 지역생산품과 행복한 동물'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유기농 건초를 먹인 가축에서 생산한 치즈를 판매하고 축분을 활용, 바이오가스를 생산하여 친환경에너지로 사용한다. 또다른 슬로시티 이태리 오르비에또에서는 마을 외곽에 대형주차장을 만들고 도심 내 차량진입을 제한하고 광장과 거리를 시민들에게 되돌려 준 것부터 시작했다.

 

슬로시티 한옥마을은 앞선 도시들의 경험을 살려 보여주기 위한 마을에서 사람이 살고 싶은 마을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한옥건축물에 대한 관심에서 한옥마을에서의 생활로 바꾸어야 된다는 것이다. 빨리 빨리가 아닌 느릿느릿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을 즐길 줄 아는 평화와 안식의 마을이 되어야 한다.

 

전주 슬로시티는 마을 만들기이고 평생학습사회 구현이며 사회적기업과 커뮤니티비즈니스의 시험무대가 되는 것이다. 대기업 대형마트 대신 골목상권과 중소상인 보호에 앞장서고 어디서 생산한 지도 모르는 가공식품 대신에 지역먹거리를 소비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는 곳이어야 한다.

 

'시간의 의미를 되찾은

 

호기심으로 가득찬 사람들로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고장

 

마당과 극장과 가게와 다방과 식당

 

영혼이 깃든 장소들이 가득하며

 

온화한 풍경과 숙련된 장인들이 사는 고장

 

계절의 변화가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맛과 영양 의식의 자발성이 존중되며

 

산물의 자연성에 율동을 맞춰

 

여전히 느림을 알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고장'

 

시민들 스스로 이것을 상상하며 슬로시티 전주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슬로시티 전주에 바라는 기대이다.

 

/ 김성주 (전라북도의회 환경복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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