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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서예·한문 이야기] ④추사 김정희의 글씨(1)

세상 욕심 버려라, 그래야 행복이 온다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두부, 오이, 생강, 나물 등 푸성귀라도 풍족하게 삶아 놓고

 

우리 부부와 아들딸과 손자 손녀들이 함께 모여 앉으면........

 

烹:삶을 팽/ 豆:콩 두/ 腐:썩을 부/ 瓜:외 과/ 薑:생강 강/ 菜:나물 채/ 會:모일 회/ 妻:아내 처/ 兒:아이 아/ 孫:손자 손

 

이처럼 한 쌍의 대구(對句)를 쓴 작품을 '대련(對聯)'이라고 한다. 본문의 양편에 쓴 작은 글씨를 일러 '협서(脅書)'라고 한다. 큰 글씨로 쓴 본문을 척추로 보고 양편의 작은 글씨는 척추의 양 편에 자리한 갈비뼈로 보아 '갈비뼈 협(脅)'자를 사용하여 협서라고 한 것이다. 협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촌사람이 누릴 수 있는 첫 번째 즐거움이자 최고의 즐거움이다. 비록 허리춤에 말(斗)만한 황금도장을 찬 고위 관직자로서 사방 1장(丈) 넓이의 밥상머리에서 식사 시중을 드는 첩이 수백 명이 된다고 하더라도 능히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고농(古農)을 위하여 쓰다. 과천에 사는 71세의 노인이.(此爲村夫子第一樂上樂. 雖腰間斗大黃金印, 食前方丈侍妾數百, 能享有此味者幾人. 爲 古農書. 七十一果.)"

 

추사는 1856년(철종 7년 병진) 71세 되던 해 10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 작품에는 71세 때 추사의 만년 거주지인 과천에서 썼다는 관기(款記:낙관한 기록)가 있으니 이 작품은 작고하던 해에 쓴 최 만년작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협서의 내용을 통해서 볼 때 만년의 추사는 득도(得道)의 경지에 들었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 그저 두부, 오이, 생강나물 등 푸성귀라도 풍족하게 삶아 놓고 우리 부부와 아들딸과 손자 손녀들이 함께 모여 앉으면, 그것이 바로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고 한 추사의 말이 가슴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제주도 귀양생활 7년과 함경도 북청에서 보낸 1년의 귀양살이가 추사를 그렇게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획과 결구와 장법 모두 공교의 극을 넘어 다시 천진한 자연으로 돌아간 상태를 보이고 있다. 깨부수듯이 운용한 거친 파필(破筆)과 자유로운 결구로 쓴 글씨이지만 그 안에 예서(隸書)의 법이 다 들어 있다. 크게 쓴 본문 글씨와 작은 글씨의 협서도 매우 잘 어울린다. 게다가 협서를 "大烹豆腐瓜薑菜"라고 쓴 폭에다 다 몰아 쓰고 "高會夫妻兒女孫"구를 쓴 폭에는 삐뚤빼뚤하면서도 깔끔하게 '七十一果'라고 관기만 쓴 예술적 감각 또한 대단하다. '七十一果'의 '果'란 '과천 사람'이 주된 뜻이지만 '果'에는 '성과(成果)', '과실(果實)'이라는 뜻도 있으니 '七十一果'는 '71년을 살면서 나름대로 71년 어치의 성과를 이룬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과일로 치자면 71년 동안을 익어온 사람'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추사의 재치가 돋보이는 관기이다. 협서의 마지막에 '고농을 위하여 썼다'는 뜻의 '爲○古農'은 古農 앞에 한 칸을 비웠는데 이는 고농이라는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고농이 정히 누구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이 작품은 글 내용도 좋고 글씨도 빼어난 명작이다. 이 작품을 감상한 오늘은 우리도 재물욕, 명예욕, 향락욕 등을 다 벗어버리고 푸성귀라도 풍성하게 차린 밥상 앞에 가족 모두 맑은 문화의식을 가지고 모여 앉아 보면 어떨까? 높은 문화는 담백한 곳에서 자란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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