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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조용한 변화, 성 인지(性 認知) 예산

허명숙(전북발전연구원 여성정책연구소장)

"성 인지 예산을 아세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性)을 인식해서 예산을 세우는 것이 아니냐는 식의 답을 듣고자 했건만,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답을 듣기도 한다. 그 중 압권은 "성인 잡지(성인지, 成人誌) 발간에 무슨 예산 타령이냐"는 말이었다.

 

하기야 성 인지 예산을 둘러싼 관련 개념들이라 할 수 있는 성 인지 관점, 성 형평성, 성 주류화, 성별 영향평가 등도 익숙하지 않은 터에, 밑도 끝도 없이 성 인지 예산을 물었으니 내 탓이 크다.

 

정책은 국민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정책을 수립할 때 국민의 경제적, 지역적, 연령, 성별, 가족구조, 장애여부 등 다양한 특성과 여건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책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性)의 입장에서 분석해보면 다분히 남성선호적임을 알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아도 될 부분에서도 주된 수혜자가 남성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같은 정책이라도 여성과 남성의 삶에 다르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에 이른바 '성을 인지한 정책과 예산'이 수립되어야 하고, 정책의 성별 영향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가로등 설치를 위한 예산을 삭감하는 문제는 성별과 관련 없어 보이지만 가로등은 야간에 여성의 보행안전 문제와 관련성이 매우 높다. 혹은 세금부과의 문제도 성별과 관련이 있는데, 소득수준에 따라 세율을 달리 적용하는 직접세는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적용하는 간접세보다 소득의 성불평등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남성보다 적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2009년 기준으로 갑상선 기능저하증 진료환자 중 여성이 남성보다 6배이상 월등히 많았으며, 갑상선 기능항진증 질환 또한 여성이 남성보다 약 3배 정도 많이 진료받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례들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성별을 고려해서 정책을 펼쳐야함을 반증해준다.

 

이런 이유로 보건복지부는 국가 암 조기검진사업의 성별 영향평가를 통하여 저소득 여성들과 농촌 여성들이 자궁경부암, 유방암 등 여성암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이동검진사업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서를 작성했다. 전라북도는 노인일자리 사업에서 대부분의 직업이 남성위주로 되어 여성노인의 일자리 참여가 어렵자 여성일자리를 위한 별도의 예산을 편성하는 개선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2009년부터 시작된 성 인지 예산((gender sensitive budget)제도가 여성들의 생활에 조용한 그러나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각 부처의 성 인지 예·결산서는 2006년 개정된 국가재정법에 근거를 두고 시행 중이며, 지자체에서도 지방재정법 개정을 통하여 2013 회계연도부터는 성 인지 예산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전망이다. 따라서 지방재정법 적용을 앞둔 이 때,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뿐 아니라 지방의회 의원, 여성단체 등의 성 인지 예산제도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성 인지 예산은 여성을 위한 별도의 예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 중립적으로 보이는 공공지출을 젠더(gender) 관점에서 분석하여 예산이 기존의 성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내고 분석결과를 예산과정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성 인지 예산을 세우려면 정책을 대상으로 한 성별 영향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행정안전부는 성별 영향평가를 2007년부터 지자체의 정부업무합동평가 항목에 포함했을 정도다.

 

전북발전연구원 여성정책연구소는 전라북도의 성별 영향평가를 위한 정책과제 선정에서부터 작성과정, 최종보고서까지 지속적으로 자문을 하고 있다. 더불어, 2009년에 수행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운영평가' 과제는 여성가족부로부터 10대 우수과제로 선정됐고, 전라북도 또한 10대 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 결실을 얻었다.

 

2013 회계연도부터 도입될 예정인 지방재정에 대한 성 인지예산 활동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책담당자들의 성 평등 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산과 정책이 성 불평등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있어야 성별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여 예산과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 허명숙(전북발전연구원 여성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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