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전라북도의회 환경복지위원장)
디자인하면 개인적인 영역의 일로 생각해왔다. 디자인은 우리말로는 설계한다, 계획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최근에는 공공디자인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구체적으로 도시디자인, 나아가 사회디자인이란 용어도 등장한다.
디자인을 도시와 공공의 영역으로 옮긴다면 어떻게 변하게 될까. 아마도 제품이나 건물디자인은 이용자의 편리성을 도모하겠지만 도시디자인은 사는 사람들에게 먼저 관심을 두게 될 것이다.
공적인, 공공의 의미로 쓰이는 퍼블릭이란 말은 고대 로마시대 '퍼블리커스'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오늘날 공화국이라는 의미의 '리퍼블릭'은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인 사안들에 대해 왕이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결정하는 정치공동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나 중국의 진시왕릉을 공공건축으로 볼 수 있을까. 수많은 노예를 동원하여 생전의 권력을 사후세계에서도 이어가고자 한 왕의 개인적 욕망이 구현된 이들 기념비적 건축물들은 공공의 일이라고 볼 수 없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건축물은 권력자가 아닌 대중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다. 공공디자인은 디자인영역에서 공화주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공공디자인은 다중이 이용하는 공간과 시설에 적용된다. 사적 디자인은 외부로부터 자신의 공간을 감추려고 하는 데 비해 공공디자인은 많은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우리나라의 공공디자인은 어떨까. 우리는 가정마다 화려하게 정성들여 꾸미면서도 집 문을 나서면 눈이 어지럽다. 제각각 간판, 제멋대로 건물, 위험한 인도 등 편안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우리도 공공디자인 유행이 불고 있다. 오세훈시장의 역점 사업인 디자인서울에서 보듯이 생활과 삶에 다가서기보다 보여주기 위한 치적쌓기용 사업에 흐를 위험에 항상 직면하게 된다. 유럽의 공공디자인과 비교하면 우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전주 아트폴리스사업은 벽천과 분수, 가로등, 신호등, 거리조성사업을 통해 많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전보다 더 밝아지고 보기 좋고 나아졌다는데 도시의 편안함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전주 서부신시가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더 한심하다. 행정의 중심 도청 바로 앞에는 모텔이 들어서고 특징없는 원룸과 상가건물로 채워지고 잘 정비된 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버리고 있는 신시가지를 보면서 공공의 계획이 어떠해야 하는지 반성을 하게 된다.
도시팽창을 염두에 둔 성장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라 정확한 예측없이 착수한 신시가지계획은 미래에 유입될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 도시는 공공보다 개인이 우선한다. 어느 토론회에서 한 발표자가 뉴욕시에서 살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대로변도 아닌 이면도로에 있는 자기 사무실 유리창에 종이 한 장 붙였다가 시당국으로부터 벌금을 부과당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다중이 보는 공공장소에 개인적 인쇄물을 부착한 죄란다. 미국처럼 개인의 자유가 허용되는 나라에서 이렇게 엄격하게 공공성이 지켜지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유럽 디자인의 중심이라 일컬어지는 핀란드에서는 소박함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디자인을 통해 모든 디자인은 공공디자인이라는 철학을 구현하고 있다.
도시란 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살기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공공디자인은 평등이고 민주주의다. 사적영역보다 공공영역에 많이 투자할수록 그 사회는 민주주의를 구현해가는 것이다. 우리는 왜 공공행사를 대형마트 앞에서 하는가.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상업시설이 공공장소가 될 수 있는가. 전통시장과 광장에서 하면 안되는가.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는 생각과 상상이 중요하다.
상상을 실현하게 하는 것은 좋은 디자인이다.
무주군 안성면사무소에 대중목욕탕을 넣는 발상, 아이들에게 점심을 누구나 먹을 수 있게 하자는 발상, 모든 도로에 자전거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드는 상상이 디자인을 만날 때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게 된다.
자유롭고 평등한 생각이 함께 사는 공공의 도시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희망을 디자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김성주 (전라북도의회 환경복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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