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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매화를 기다리며

선산곡

시인인 친구와 만나 모처럼 거리를 걸었다. 경원동 서점들이 있는 길을 지나 우체국 앞 다가동 골목길은 한산해서 좋았다.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걷는 우리들 눈에 기운 햇살이 수평선에 가까워져 있었다. 전주천이 흐르는 다가교 아래로 내려가 산책로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평소와는 달리 제법 많은 길을 걸었던 터라 몸을 부리는 휴식이었다. 문득 살펴보니 우리 자리는 어느새 그림자가 지고 햇볕은 저만치 물러가 있었다.

 

"그림자가 햇볕을 저만큼 밀어냈네."

 

조금 전 서점에서 산 책을 뒤적거리던 친구가 고개를 들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지."

 

몇 뼘씩 그림자가 그렇게 멀어져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똑같은 심정으로 웃었다. 친구가 책을 덮었고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둑 위로 시선을 옮겼다. 한 줄로 늘어선 버드나무 가지가 하늘거리고 있었다. 체감의 밀도가 어지간히 높았던 지난 겨울추위, 쌓인 먼지와 함께 잔설까지 말끔히 씻기어가도록 얼마 전 비가 내린 뒤였다. 경칩이 낼 모레건만 풍경은 아직 잿빛이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구석구석 스며있는 봄기운이 눈에 보였다.

 

"버드나무가지에 색이 스몄네."

 

"그래. 살짝."

 

중국 동진의 도연명 집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었다. 스스로 아호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고 했다. 오류선생의 이른 봄도 우리들의 시선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말한 돌아오는 것이란(歸去來), 시각에 따라 돌아가는 것도 될 터이니.

 

그 도연명도 동산에는 솔, 대, 국화를 심어 계절의 소요를 즐겼다. 그 중에 끼지 못한 매화를 아쉬워한 분이 퇴계(이황) 선생이었다. "매화는 어찌하여 그 속에 못 끼었나. 나는 매화를 넣어 친구를 맺었나니, 굳은 절개, 맑은 향기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라" 했다.

 

퇴계 선생의 매화사랑은 남다른 모양이었다.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는 유언을 마치고 학자죽음을 하신 분이었다. 오죽하면 당대의 어떤 선비가 '매화에 편협된 분'이라고까지 했을까.

 

완상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했던 조선시대에 선비들은 분재의 가치를 알았나보다. 뜰에 있는 매화나무가 아닌 분(盆)이었고 때가 겨울이었으니 반드시 다가오는 봄에 꽃 피도록 정성을 다하라는 뜻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물을 주는 뜻조차 나 같은 속인과는 당연히 격이 다르다. 하물며 임종까지 지킬 수 있었던 매화분이었다니, 그 맺음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들의 대화는 그렇게 매화로 흘러갔다. 매화가 곧 필 것이란 이 계절의 문턱을 상기하는 것, 그 마음은 곧 차분한 기다림이었다.

 

3월이다. 곧 사방에 꽃이 필 것이다. 매화는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르게 핀다. 서화의 뜻이 아니더라도 이 봄에 향기를 뿜어주는 매화의 아름다움이 어찌 군자의 것이기만 할 것인가.

 

"매화가 피면 만나야지."

 

헤어지기 전 우리들이 한 약속이었다.

 

*수필가 선산곡씨는 1994년 <문예연구> 로 등단했다. 수필집 「LA쑥대머리」·「끽주만필」·「속아도 꿈 속여도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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