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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재난보도와 여성관련 보도 가이드라인

허명숙(전북발전연구원 여성정책연구소장)

이웃나라 일본의 재난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옆 사람이 소중해 진다.

 

또 한가지. 헬멧을 쓰고 보도하는 일본 방송의 앵커와 기자의 모습을 보면서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구의 축까지 흔든 강진, 지진에 이은 쓰나미, 원전 폭발 위기 등 대형 재난이 일어났는데도, 일본 방송사들이 피해자 중심의 과장되지 않은 보도로 차분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의 힘일까. 재난방송 매뉴얼과 이의 준수!

 

우리도 이른바 '재난보도 매뉴얼'이 있다. 하지만, 재난보도를 할 때는 속보보다 정확성이 중요하다는 철학이 우리에겐 없는 듯하다. 신념과 철학이 없는 보도,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여성관련 보도로 생각이 이어졌다.

 

성 불평등이나 성 역할 왜곡 측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니 이것도 철학이나 신념의 결과인지 의문스럽다. 다만, 여성관련 보도의 양상이 과거 희생적이고 순종적이며 운명주의적인 수동적 여성 이미지로만 초지일관해온 데 비해, 최근 들어서는 강하고 적극적인 여성을 크게 부각시키는 과대 표상이 대세를 이루는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여성 등장횟수가 남성과 견줘 배 이상 부족하며, 전문가 인터뷰는 대부분 남성을 대상으로 하며, 여성은 일상적 느낌을 묻는 인터뷰어로 등장한다. 여자 선수의 외모를 부각시키는 사진과 용어는 아직도 스포츠 기사의 단골 메뉴다. 사극에서조차 주제와 관계없이 가슴이 보일 듯 말 듯한 한복차림으로 여배우를 등장시키는가 하면 얇은 옷차림으로 비에 젖는 모습을 훑어 내려간다. 여성 대상의 오전 방송은 가족주의와 모성이데올로기를 노골적으로 강요하고, 젊은 층을 상대로 한 트렌디 드라마도 진취적 여성상을 제시하는 데 주저한다. 여성 스포츠 선수에 대해 언론은 그들의 숨겨진 여성성을 찾아내려 애쓰고, 그들이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면 감탄하면서 강조하곤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강하고 적극적인 여성을 자주 대하게 되면서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여성의 이미지와 성역할이 전통적인 구도를 벗어난 듯했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진출이 확대되면서 경제력을 갖춘 여성 시청자가 증가한 현상을 반영한 듯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강한 여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협적이고 파괴적으로 그려지며, 가부장적인 남성의 질서에서 위험요소임을 암시한다. 강한 여성 이면에 소위 약한남, 초식남, 찌질남 등 약한 남자를 과도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목전에 산적한 양성평등의 과제를 간과하게 만든다.

 

미디어에서 여성이 지나치게 강력한 존재로 부각되면서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여성문제의 의미가 격하되고 있다. 최근 심심찮게 거론되는 알파걸(alpha girl: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엘리트 여성) 보도 역시 남성을 기준 삼아 예외적 여성을 보여주면서 성차별이 엄존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여성개인의 능력 유무로 대체하고 있다.

 

여성의 지위가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나 임금수준은 남성에 비해 여전히 열악한데도 드라마 등에서 표상하는 강한 여성상이 자칫 남성의 역차별을 주장하는 강력한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

 

언론은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여성에 대해서는 남성적 시각에서 재구성된 이상화된 여성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해왔다. 여성을 여전히 희화화하고, 개인간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왜곡된 틀 안에 가두어두고 있는 것이다. 제작 가이드라인이 없어서일까?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이미 2004년과 2005년 성평등적 관점의 방송심의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각 방송사에 전달한 바 있다.

 

언론은 사회를 반영하는 동시에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존재이다. 여성의 고민과 관심의 본질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허명숙(전북발전연구원 여성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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