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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서예·한문 이야기] ⑪현판(懸板)-창암 이삼만 선생의 글씨(3)

창암 서예의 경지, 다시 한 번 헤아리게 한 명품

普濟樓 - 두루 (중생을)구제하는 누대

 

會僧堂 - 스님들이 모이는 강당

 

普: 넓을 보, 두루 보/ 濟:건널 제, 구제할 제/ 樓:다락 루, 누대 루/ 會:모일 회/ 僧:중(衆) 승/ 堂:집 당/ 懸:매달을 현/ 板:널빤지 판

 

창암 이삼만 선생이 쓴 현판이다.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에 소재한 천은사(泉隱寺)에 걸려 있다. 이처럼 나무 판에 쓰거나 새겨서 궁궐이나 절집 혹은 사당이나 정자 등에 그 건물의 이름으로 걸어둔 것을 현판((懸板)이라고 한다. 더러 '간판(看板)'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칭호이다. 간판(看板)은 공적인 공익사업이든 개인적인 이익사업이든 간에 사업장의 소재를 알기기 위해 광고 목적으로 내건 명패로서 원래 일본에서 발생한 한자어이다. 이 간판에 상응하는 중국어는 '초패(招牌zh?opai)'이다. 그리고 우리의 현판에 해당하는 중국어는 '편액(?額bi?n?)'이다. ?은 '평평할 편(변)'으로 훈독하며 '扁(넓적할 편, 작을 편)'으로 쓰기도 한다. 額은 '이마 액'이라고 훈독한다. 건물의 이마 부분에 해당하는 자리에 걸기 때문에 '額'자를 넣어 ?額이라고한 것이다. 이 편액(?額)이라는 단어에서 다시 '액자(額子)'라는 단어가 파생하였는데 액자는 편액과 다른 개념으로서 4각(물론 4각 이상도 가능)의 틀을 짜서 그 안에 작품을 넣고 더러 유리를 덮어 끼운 걸개 양식을 칭하는 말이다. 額子의 '子'는 의자(倚子), 탁자(?子) 등과 같이 명사에 붙이는 접미사이다. 액자라는 말은 조선 후기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사용하기는 하였지만 특히 일본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에서는 액자라는 말과 함께 족자(簇子)라는 말도 사용하는데 족자는 세로로 늘어뜨려 거는 두루마리 형식의 걸개를 칭하는 말이다. 족자는 원래 무극(舞劇:무용극)에서 사용하던 무구(舞具)의 일종으로 대나무를 가늘게 발처럼 엮어 주로 얼굴을 가리던 물건을 칭하는 말이었다. 현재 사용하는 작품의 형식으로서의 족자라는 말은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말이다. 세로로 늘어뜨려 거는 족자와 달리 가로로 길게 말아두는 작품 형식은 '권자(卷子)'라고 한다. 죽간이나 목간으로부터 송나라 이전까지 책은 다 이 권자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보제루(普濟樓)의 普濟는 널리 뭇 중생을 다 구제한다는 뜻이다. 루(樓)는 반드시 2층 이상이어야 하며 주로 널리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선 건물을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보제루는 절 안의 건물 중에서도 대웅전이나 대웅보전 등 본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2층으로 서있는 건물에 주로 붙이는 이름이다. 우리 고장 김제 금산사에도 본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2층 건물에 보제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회승당(會僧堂)은 문자 그대로 스님(僧)들이 모이는 큰 방이다. 스님의 한자어인 '僧'은 '승가(僧伽)'의 줄임말인데 승가는 범어 '상가(sagha)'를 음역한 것이고 상가(sagha)는 출가수행자의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堂)은 건물의 중심이 되는 큰 방(Main Hall)을 이르는 말이다.

 

이 현판들은 이삼만 선생이 쓴 현판 중의 수작이다. 보제루(普濟樓)는 창암 선생이 평소 절의 현판이나 주련(柱聯: 목판에 새겨 절의 각 기둥에 건 글)을 쓰기에 적합한 글씨로 평한 신라의 명필 김생의 서체로 썼고, 회승당(會僧堂)은 중국 당나라 때의 명필이었던 안진경(顔眞卿)의 서체로 썼다. 창암 서예의 경지를 다시 한 번 헤아리게 하는 명품이다.

 

봄이 무르익어 간다. 산행 길에 어느 절에라도 들르거든 절의 현판과 주련을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이들 현판과 주련은 대부분 명필들이 쓴 높은 수준의 서예작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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