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고의 드잡이공으로 꼽히는 홍정수 씨가 11일 오후 5시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인은 최근까지도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사업단에서 드잡이공으로 근무하면서 미륵사 석탑 해체 작업을 도맡아 했다.
드잡이공이란 전통건축에서 건물 기초를 만들때나 해체할 때 돌을 들고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장인을 말한다.
고인은 서울 숭례문과 덕수궁 돌담,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현충사,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을 비롯해 반세기 동안 무수한 석조문화재 보수에 드잡이공으로 참여했다.
이런 공로로 2007년에는 대한민국문화유산상 보존관리 분야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인이 문화재 복원 사업에 입문하게 된 것은 1959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미역 등을 팔며 근근이 생활하던 고인은 누나가 당시 알아주던 드잡이공인 고 김천석과 결혼하면서 매형에게 이끌려 문화재 복원 현장에서 등짐을 지고 기왓장을 나르는 허드렛일을 하게 되면서 드잡이 인생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고인은 2007년 문화유산상 수상 당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드잡이일로 1960년대에 참여한 통영 세병관 보수 작업을 꼽기도 했다.
당시 고인은 "지금은 기계로 많이 작업을 하지만 그때는 다 손으로 했다"며 "일할 때는 힘들었지만 그때 손으로 하나하나 쌓아올린 270m 담을 보면 지금도 보람을느낀다"고 말했다.
고인은 드잡이공 생활에 어려움도 많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문화재 복원사업이 계속 있는 일이 아니어서 일이 없을 때는 일반 공사현장의 담이나 석축 작업도 닥치는 대로 했지만 생활은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작업을 해놓고 돈을 떼이는 일도 다반사였으며 이런 어려움에 한창 자식들이 자랄 때는 부인이 해장국 장사를 해야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고인은 "이제는 사는 걱정 안 하고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면서 "여든이 될 때까지도 문화재 복원 현장에서 땀 흘릴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고인의 주변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하고자 했지만, 끝내 보유자로인정받지는 못했다.
빈소는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3일 오전 5시. 031-810-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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