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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성 칼럼] 도지사 삭발

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전북 도지사가 또다시 삭발했다. 강현욱 전 지사가 2003년 새만금 사업의 지속추진을 주장하며 삭발한지 8년만의 일이다. 김완주 지사가 지난 6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분산배치를 위한 범도민 비상시국 선포식에서 삭발한 것은 절박감 섞인 호소의 이유에서다. 극단과 위기가 첨예하게 중첩된 사안이기에 지역 반응도 예사롭지 않다.

 

도지사는 도정 최고 전략가다. 그 자리는 지역의 발전과 장래를 위해 결단한다. 결단은 고뇌와 용기를 반영하게 된다. 고뇌 끝에 선택하는 결단은 지도력의 핵심으로 리더십의 매력을 생산하기도 한다. 고뇌의 치열함과 결단의 비장함만큼 리더십은 빛난다는 것이다. 이런 리더십의 신뢰는 반전의 묘미가 있다. 도지사 삭발도 그 사례다.

 

물론 삭발의 단안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김 지사가 주장하는 "LH 본사를 껴안고 죽을지언정 결코 내놓을 수 없다"는 강경한 결심은 특유의 '냉혈'적 성품도 담겨있다는 인상이 짙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정부정책에서 소외된 지역의 억울함과 박탈감이 민심바닥에 깔려있다는 게 맞다. 삭발은 이런 멍든 상황의 새로운 출구를 외치는 도민의 염원과 의지가 함께 한 투혼이라고 본다.

 

비난·반발 가능성을 무릅쓰고 삭발까지 갈 수밖에 없는 지역분위기도 안타깝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서로 양보 없는 싸움에선 극적 긴박감과 승부사의 비장함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게 다반사다. 민심은 또한 양면적이다. 다수 주민은 도지사가 조용히 대응하길 바라면서 한편 결단의 결연함을 원한다. 문제는 갈수록 전북과 경남 두 곳의 전방위 압박이 맹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정부 책임이 크다. 그처럼 어설펐다. 우선 원칙이 없다. LH의 지방이전은 2005년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한국토지공사는 전북에, 대한주택공사는 경남으로 이전키로 한 계획이다. 2009년 이들 공기업이 통합되고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그해 몇 차례 '분산배치가 기본 방향'이라고 확인처럼 밝혔다. '사내 독립(CIC· Company in Company)제도'를 통한 분산배치의 차원이다. 그런 방침을 지난해엔 정운찬 전 총리와 정 장관 등이 '한곳으로 옮기는 게 바람직하다'며 얘기를 바꿨다. 약속을 스스로 깼으니 앞으로 정부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

 

게다가 이 결정을 차일피일 끌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 장관은 지난해 9월 '연말 문제 매듭'을 밝혔지만 지금껏 해법이 늦어지고 있다. 지역발전위의 구성, 협상재개, 의견청취 등 번다한 절차를 거쳐 6월말까지 결판낸다고 한다. 이건 지역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 LH통합 이후 2년 동안 양측 의견을 들어왔고, 입장 내용도 검토될 만큼 진행돼 왔다고 생각한다. 미룰 이유가 없다.

 

문제해결은 쾌도난마(快刀亂麻)에 있다. 엉킨 실은 칼로 끊어야 한다. 더 이상 미망의 모습은 신뢰의 위험을 겪는다. 약속은 지켜가야 한다. 지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정책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은 책임 있는 당국이 할 일이 아니다. 그때그때 시류만 이용하려 해서도 안 된다. 더군다나 지역이기주의로 몰아가는 접근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분산배치가 상생과 공존을 감안한 현실적 대안이라고 본다. 그것이 "정부 약속의 번복으로 전북 도지사가 삭발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 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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