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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영화와 영화제, 별거

김성주 (전라북도의회 환경복지위원장)

 

12번째를 맞는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이란 영화 '씨민과 나데르, 별거'가 상영되었다. 딸을 위해 이민을 가고자 하는 아내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보살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남편 사이의 갈등이 영화의 중심이다. 영화에는 남편의 실직으로 인해 임신한 몸으로 파출부 일을 해야 하는 가난한 여인이 등장하고, 치매를 앓고 있으나 돌봐줄 사람이 없는 노인을 통해 이란 사회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면서도 신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과 아버지의 거짓말에 실망하면서도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대열에 합류하는 딸의 심리 갈등을 깊숙하게 그리면서 개인의 고민도 비켜가지 않는다.

 

감독은 낯선 나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의 고민 속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란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지만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영화의 매력이다. 미국과 핵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악의 제국'이라 불리며 엄격한 율법이 다스리는 이슬람국가에 사는 이방인들도 우리와 같은 소망을 갖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는 액션영화 매니아다. 인디아나 존스, 007시리즈가 가장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 중 특히 전쟁영화는 놓치면 안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액션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흥행의 공식에 따라 쓰여진 시나리오는 그게 그거라 뻔한 이야기에 식상하게 되고 유일한 자극제인 선정성과 폭력성에도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다. 영화란 엎치락 뒤치락 반전이 있어야 하고 모름지기 뭐든지 좀 부서뜨려야 한다고 생각해 온 나에게 무슨 영화가 이래라고 따분하게 봤던 영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약간 치사하고 유치한 인간들이 등장하는 홍상수식의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가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주영화제는 독특한 영화제다.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시대와 나라를 초월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하바나 블루스'란 쿠바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어려운 현실과 대비되는 낙천적인 모습을 통해 카리브해의 낭만을 떠올리게 되고 '실크로드의 형제들'에서는 중앙아시아의 드넓은 벌판과 그들의 소박한 삶도 알게 되고, 스리랑카 영화 '마찬'을 보면서는 세상의 사기꾼은 모두 똑같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실소하면서 오래 계속해 온 내전의 격렬함과 일상의 평온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다는 것.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나 이념이 달라도 비슷하다는 것이 다문화사회를 살게 되는 교훈이 될 것이다. 백인에게 열등감 가질 필요도 유색인종에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전혀 없다. 어디나 나쁜 놈 있고 착한 사람 있기 마련이다.

 

흔히 우리는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막작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레드카펫을 밟는 배우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 무슨 영화가 상영되는지는 모르고 영화제의 경제적 효과만 따지는 사람들. 영화는 보지 않고 영화제 분위기를 보면서 영화제가 성공했다고 평가한다면 본말이 바뀐 게 아닐까.

 

전주는 인구 1만 명당 영화 스크린 수가 제일 많은 도시란다. 영화를 많이 보고 영화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영화제를 즐기는 시민들이 많은 도시가 영화도시가 될 것이다.

 

우리는 영화와 영화제의 희한한 별거를 끝내야 한다. 영화가 있는 영화제, 영화를 이야기하는 영화제가 되어야 한다. 이제 전주국제영화제가 며칠 남지 않았다. 곧 헤어지면 1년 후에나 만날텐데 그만 별거를 청산하고 영화 많이들 보시라.

 

/ 김성주 (전라북도의회 환경복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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