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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장마철 '정읍집'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남아공 더반. 그곳에선 1974년 7월 4일 프로권투 홍수환 선수가 아널드 테일러를 이기고 새 챔피언으로 등극한 뒤, 국제전화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수환아! 대한민국 만세다!" 란 말을 해 한때 모든 국민의 유행어가 된적이 있다.

 

공교롭게 그 경기가 있던 날 서울에서 한 손님이 전주에 왔다. 화가인 손님은 해질녘 전주에 도착하자마자 첫 화두가 "정읍집에서의 막걸리 한잔"이었다.

 

문화예술인들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상징적 문화공간 역할을 해왔던 곳이 '정읍집'이었다. 들어서자 그곳은 기약 없이 만나는 예술인들로 언제나 콩나물시루처럼 빼곡이 앉아 있었다. 그때 '정읍집'은 우리 예술인들이 속칭 '정읍 대학원'이라 불렀다. 그만한 이유는 그곳에는 언제나 시인, 화가, 음악가들이 한데 어우러져 작품에 대해 칭찬과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곳이어서 대학원이라 불렀다.

 

하반영 선생님은 전북에서 예술을 접한 사람들은 꼭 들러 필수학점을 이수하는 곳이라고 넋두리 삼아 말씀하셨다. 한 시대의 예술문화가 현재의 삶과 예술의 역사를 점철로 이루었듯이 이제 그 장소 정읍집은 없어졌다. 낭만과 추억 그들의 입담을 충족히 들을만한 공간이었는데….

 

전북의 별들이 모이는 이곳에는 이미 작고하신 화가 토림 김종현, 벽천 나상목, 야린 배형식, 고화흠, 한소희, 김용봉, 권영술, 최근에 작고하신 전병하 선생님 등 많은 분들이 거쳐갔다.

 

정읍집에 오래전 벽면에 가득히 걸린 작품 중에는 이중섭, 고암 이응로, 천경자, 운보 김기창, 박래현 작가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이 걸려있었다고 후문으로 들었다.

 

이런저런 입에서 입으로 바람에 실리는 소중하고 역사적인 내용들이 이제는 희미해져간다. 그러나 몇몇 선배님들이 후배들을 위해 사라져가는 이 지역 근현대 이면의 예술사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애를 쓰고 계신다. 고마운 일이고, 우리는 이분들의 작업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도와드려야 할 것이다.

 

시대가 너무 바빠서 수평보다는 수직을 선호하다 여기까지 와버린 것 같다. 윗 선배님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작품에 대한 치열성, 끊임없는 열정들을 직·간접으로 경험할 수 있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이야기 주머니 속 같은 매개 공간이 없어 아쉬움이 많다. 그래서 아담, 사라문다방, 속칭 정읍대학원인 '정읍집'이 그리운 것이다. 뜨고 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지만 예술세계의 뜨고 지는 것은 선대의 예술의 맥을 이어가고 오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이 있다.

 

긴 장마철, 지금도 우리는 오후가 되면 막걸리 집을 일찍부터 찾는 예술인이 있다. 어쩌면 그들도 오래된 정읍집에서 선배님들이 지향했던 예술적 치열성의 이어감에 대한 향수를 마음속에 더 그리고 싶어 찾고 있는지 모른다.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은 전주 출신으로 전주해성고와 원광대 미술교육과, 동국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전북미협 지회장과 종이문화축제 운영위원장, 한지문화축제 실행위원장 및 총감독 등을 역임했으며, '반영미술상'(1996)과 '전주시예술상'(2002) 등을 수상했다.

 

/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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