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 (논설위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유치에 실패한지 50여 일이 지났다. 지난 2년 동안 전북도를 비롯 도내 국회의원, 각종 시민단체가 올인하며 열을 올렸으나 결국 경남 진주로 가고 만 것이다. 대신 국민연금공단이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키로 했다.
실패의 근본 원인은 지역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부의 말만 믿는 순진함에다 전략마저 미흡했다.
그 후유증은 컸다. 도민 상당수는 실망과 허탈감에 빠졌고 '전북은 되는 게 없어!'라는 자조를 씹어야 했다.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는 이번 기회에 '전북의 판을 바꾸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어쨌든 LH 유치 실패는 '전북 발전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후속대책으로 전북도는 5가지를 정부에 요구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동반이전 △혁신도시 주변에 대규모 국가산단 조성 △혁신도시 유휴공간에 국제 규모의 컨벤션센터 또는 프로야구 전용구장 건립 △새만금개발청 신설 △새만금특별회계 설치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렇다면 전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대로 손 놓고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번 뜻을 모을 것인가.
해법은 기금운용본부 동반이전에 모든 지혜와 힘을 모으는 일이다. 그리고 반드시 이를 실현시켜야 한다. 어렵긴 해도 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실 요구사항 중 새만금 관련 사항은 LH와 무관하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는 기금운용본부 동반 이전과 상관관계에 있다.
그럼 잠깐 기금운용본부에 대해 살펴보자.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공단의 핵이다. 현재 운용하는 기금만 340조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1년 예산과 맘 먹는 돈이요, 세계 4대 연기금으로 꼽힌다. 이 기금은 채권에 70%, 나머지는 주식 등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투자처를 찾지 못해 '연못속의 고래'라 불릴 정도다. 그래서 해외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지난 달 23일 있었던 미국 뉴욕사무소 개소식은 국민연금의 위상을 실감나게 보여줬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불러도 오지 않는다는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CEO 등 세계적 금융거물 200여 명이 참석한 것이다. '월가의 슈퍼갑(甲)'으로 등극한 셈이다.
물론 이러한 기금운용본부를 전북혁신도시로 이전시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당초 서울에 잔류할 예정이었고 금융기관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그러나 그것은 핑게에 지나지 않는다. 전북에 온다고 해서 기금 운용이 잘못될 리도 없다. 펀드 매니저 등의 이직률이 높을 수 있으나 그것은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글로벌 시대에 서울에 있으나 전주에 있으나 개걸간에 불과하다.
문제는 기금운용본부를 이전시키기 위해 크게 두 집단을 설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는 담당부처인 보건복지부요, 또 하나는 가입자단체다. 보건복지부의 설득은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가입자 단체, 그 중 가장 영향력이 큰 노총과 경영자단체를 설득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결국 전북도와 정치권, 도민들이 "기금운용본부가 전북에 와도 서울 못지 않다"는 점을 논리와 진정성을 갖고 이해시켜야 한다.
그 동안의 과정을 생각해 보라. LH 유치를 위해 도지사와 국회의원들이 삭발을 하고 도의원들이 서울까지 마라톤을 하지 않았던가. 또 도내 곳곳이 플래카드로 도배되지 않았던가. 그러한 정열과 성의라면 이들을 설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들을 설득해 전북혁신도시에 기금운용본부가 온다면 전북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 금융회사 사무소들이 속속 들어오게 된다. 그 동안 잠자던 전북이 깨어나는 계기일 수 있다. 정부안대로 2014년까지 공사체제로 독립한다면 오히려 일거양득이다.
이 점을 무겁게 고민하면서 즉시 행동에 옮겼으면 한다.
/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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